중편
피망록
작가의 말
이것은 내가 겨우 알고 있는 몇 가지 코미디 형식을 차용해 쓴 소설입니다. 나는 나 자신이 90% 정도 코미디 작가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네가 쓰는 건 코미디가 아니라고 혼내요. 힝 너무해.
코미디를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그러니까 종교적인 믿음이 필요해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분명 웃기리라는 믿음. 비극이 개인적이라면 희극은 사회적이며, 내가 하는 건 하찮은 짓거리가 아니라는 믿음. 프란츠 카프카는 위대한 코미디 작가이며, 사무엘 베케트는 부적절한 코미디의 장인이고, 필립 로스는 슬랩스틱의 대가였다는 믿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아, 아닙니다. 또 여기에는 수많은 교리가 있어요, 정말 위대한 그런…… 과장과 비약, 반복과 변주, 풍자와 해학, 농담과 역설과 패러디와…… 게다가 많은 기술도 배워야 하는데…… 진부함을 기발하게 이용하고…… 칭찬처럼 독설을 뱉고…… 진실하게 농담하며…… 시력교정용 안경인 척 색안경을 끼는 음흉함과……
만일 다른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내가 읽었다면 나는 그를 마음 속 깊이 응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내가 썼으니, 나는 나를 응원하기로 한다. 나는 쓰도록 하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하는 방식으로. 잘 하고 있다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