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다. 챗GPT는 사람의 온갖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준다. 누구는 챗GPT가 웹의 그림자에 불과하다지만 우리는 싫든 좋든 AI 시대에 밀려 들어가고 있다. AI가 소설을 쓰면 어떻게 될까. 이세돌과 바둑을 뒀던 알파고는 바둑이 뭔지도 몰랐다.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소설이 뭔지 알고 창작의 즐거움을 아는 AI가 은하계만큼 광대한 작품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쓰는 소설인 휴먼 장르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AI가 쓰는 소설과 인간이 쓰는 소설의 대비를 통해 현대문명의 속성과 장래를 나타내고자 했다. 인류가 스스로 만든 첨단 문명에서 문학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내 인간 제자들의 꿈은 ‘휴먼 장르’에 응모해서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제자 예빈도 그렇다. 이 장르는 원고지 85매가 기준인 단편과 원고지 1,000매가 기준인 장편 분야로 나뉘어 있다. 원고지라는 골동품 개념을 설명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건 작은 네모가 이어진 종이라는 물체인데 아주 옛날에 사람이 손으로 글을 쓸 때 사용했다고 한다. 사람이 지금도 원고지를 쓰냐고. 쓰지 않지만 그게 인간의 마음에 추억과 정서를 일으키는 중요한 기준으로 남아 지금도…… 그만두자. 설명할수록 생각이 꼬인다.
인간은 과거에 쏠리는 종이다. 인간에게 과거는 절대로 지나가지 않으며 시퍼렇게 살아 눈앞에서 항상 어른거린다. 그들은 과거와 이어진 연상 이미지에 특히 약하다.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 가운데 우뚝 선 흰 바위와 노란 낙엽이 휘날리는 길과 가로등 아래로 펑펑 쏟아지는 눈과 붉은 노을이 번지는 해변과 같은 장면 말이다. 제자들이 쓴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여지없이 나온다. 이런 장면을 배경으로 서로 밀고 당기며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로맨스와 드라마 역시 빠지지 않는다.
AI 로봇은―제작된 지 70년이 넘는 구식 로봇조차도―읽지 않는 휴먼 장르의 특징은 따분함이다.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끝까지 읽어내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작품 스케일은 작으며 인물도 소수고 내면의 깊이도 얕다. 첫 문장과 첫 문단을 읽으면 작품이 전개될 99만 경우의 수가 읽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 안타깝게도 모든 작품이 그 예상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살인범의 정체와 살인 수법이 뻔한 추리소설을 누가 읽겠는가.
로맨스와 역사와 가족 갈등을 다룬 소설이 모두 그렇다. 인간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하는 작품들도 조금 낫긴 하지만 대동소이하다. 또 그들은 문자라는 형태로 작품을 쓰며 오직 문자로 쓴 작품만 응모할 수 있다. 문자는 비효율적이며 오해되기 쉬운 수단이다. 서로가 주고받는 문자가 잘못 전달되지 않으려면 길고 섬세한 말들로 치장해야 한다. 전혀 오해받지 않을 뇌파를 이용한 전송수단을 두고 왜 이러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이런 제안을 하면 꼭 비인간적이란 반론이 붙는다. 인간 두뇌에서 생성되는 뇌파를 사용하는 방식이 왜 비인간적으로 취급받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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