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도 더 전에, 나는 두 아이의 육아로 허덕였다. 갓난쟁이를 막 벗어난 아이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요구했고, 비교적 수월한 첫 아이도 아직 어릴 때였다. 젊은 가장은 그런 셋을 먹여 살리느라 늘 귀가가 늦었다. 그때 내 옆에서 나를 돕는 것은, 오직 로봇 청소기뿐이었다. 움직이라면 움직였고, 멈추라면 멈췄다. 때가 되면 기특하게도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시절 내 말을 듣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지금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기능이 떨어지는 그것을 나는, 사랑했다.
굳건하다고 믿는 관계는 정말 굳건한가, 천륜은 진정 하늘의 인연일까. 배신은 항상 믿었던 이가 하고, 가까웠으므로 우리는 상처 입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신의 기본값은, 친밀이다. 나는 수명이 다한 로봇 청소기를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그 반대의 경우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인간이 로봇을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아기는 두 명의 태아에게 악착같이 달라붙어 발달을 이어갔다. 셋은 함께 자랐다. 잘 자라던 두 아기가 왜 갑자기 성장을 멈추고 죽어버렸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끈덕지고 모질게 생명을 유지한 아기는 두 명의 태아를 매달고 태어났다. 6센티 정도의 두 태아는 머리카락과 눈, 척추 등이 발달해 있었으나 심장이 없었다. 1시간 30분의 수술 끝에 붙어있던 두 명의 기생 태아가 제거되었다.
나는 첫 화면으로 돌아가 의사의 상의 수술복이 가린 아기 침대의 이름표를 확대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의 건조한 고딕체로 쓰인 이름은 영일, 이었다.
내가 막 이름을 확인한 순간 혜정이 나타났고, 이제껏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알 수 없는 비애가 미처 억누를 틈도 없이 그녀를 향해 폭발했다. 살면서 그때만큼 격렬하게 살의를 품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손에 잡히는 게 무엇이든 무기로 사용했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혜정은 저항은커녕 제대로 된 방어 한번 못하고 쓰러졌다. 혜정이 쓰러진 뒤에도 나는 그치지 않았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기진해서야 비로소 나는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혜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게 타박타박 걸어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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