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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닐 거라는 착각

소설 단편

박은비 2025-01-12

ISBN 979-11-93452-87-5(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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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징그럽고 무섭게만 느껴져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나를 집어삼켜 으득으득 씹어 먹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진득하게 앉아서 고민하느라 하루를 다 써버렸다. 어렵사리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나에게 그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고, 아직도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진득하게 앉아서 이 이야기를 썼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리는 것만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며 마침표를 찍었다.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는 모욕과 “사람답게 좀 살자”는 호소, 그 사이 어딘가에 비스듬히 서서 이 소설을 독자께 보내드린다.

“여보, 꼬리뼈가 좀 자란 것 같은데.”

분위기를 망칠지도 몰랐지만,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내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도 나가기에 바빴다. 늘 하던 것처럼 남편이 내 귀에 숨을 불어넣었다. 평소라면 기꺼이 응했겠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좋기는커녕 징그럽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웬 꼬리뼈?”

남편이 속삭였다.

“여기, 꽤 자란 것 같아.”

내가 남편의 뭉툭한 꼬리뼈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남편이 몸을 떨었다.

“간지러워.”

남편이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손끝으로 만져지는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살짝 비틀었다. 아! 남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뭐 하는 거야?”

나는 그것에서 여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봐, 꼬집으면 잡힐 만큼 튀어나왔다고.”

연애 때부터 그의 꼬리뼈를 만져온 세월이 얼만데 그것이 이질적으로 자라는 중이라는 걸 모르겠는가. 엉덩이가 갈라지는 골의 시작점에 자리한 꼬리뼈는 남편이 잘 느끼는 성감대 중 하나였고, 오붓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내가 빠짐없이 어루만지는 부분이었다. 내 손끝에 닿은 감각은 정확했다.

“그만해.”

으르릉. 순간 남편의 목울대 안이 작게 공명했다. 짐승이 위협할 때 내는 소리 같았다.

2020년 제2회 장수문학상 본상 수상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창(槍)』 『동제(洞祭)』출간

  

revan_06@naver.com

 

 

아직 아닐 거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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