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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표류

소설 단편

이한얼 2025-04-06

ISBN 979-11-94803-05-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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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삶이며, 그래서 삶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에는 정답이, 그러니까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정답은 삶의 한 지점에 도달한 후 스스로 그것을 정답이라고 일깨우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 주인공 척은 4년간 표류한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찾은 작은 것들, 불을 피우는 법이라든가, 작은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법을 배우고 환호한다. 우리가 삶에서 찾는 정답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삶은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게 삶은 무한한 시공간을 표류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중간에서 만나는 작은 것들,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곤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우주와 시간의 파도가 자신을 뒤흔들 때 자신이 어느 곳을 향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어느 곳을 향할지 모른 채 결말을 마주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마주치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 그것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긴 표류에서 그것만이 위로일지도 모르니까.

조형철은 기겁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아, 조심 좀 하자고요. 씨발, 이러다가 진짜 우리가 먼저 뒤지겠네.

나는 고개를 조금 들고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았다. 조형철은 질렸다는 듯 나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억양을 낮춰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휴게소가 얼마 안 남았어요. 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가입시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시간이 없다. 1분이라도 더 빨리 가야 그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실장님은 우리 재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상황이 다르다 아임니꺼? 내가 육수부가 범인이라고 하니까 뭐라 했심니꺼? 끝까지 육수부는 연루되지 않았다고 안 했어요?

-칠포항까지 가봅시다. 거기 항만 용역 업체 검색이나 좀 해봐요.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제발 속도 좀 늦춰요. 차가 산산조각이 날 판이네.

말없이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속도가 170을 넘어갔고 준중형에 불과한 차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 뒤뚱거렸다.

-저기 휴게소, 5km 앞에 휴게소가 있심더. 들렀다 가입시다. 오줌 쌀 거 같심더. 절박뇨 증세가 있어요. 지금 터질 거 같다고요.

슬쩍 곁눈질해 보니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급하면 사투리가 심해지는 조형철이다. 작은 눈은 찌그러져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진짜 같았다.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문학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웹북 『보델레 함몰지』 『캄브리아기의 달빛 아래』 『북해 표류』​『활자중독자의 내면풍경』 출간 

 

ag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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