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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후 증언자의 마지막 쇼타임

소설 단편

박은비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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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쓰다 만 폐허에 서 있는 당신들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은 결과 세계는 끝장났다.
결국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
그 마음이 항상 끝장을 보게 만든다.

나 같은 건 있는지도 모를 신 역시
이 세계를 위해 분투하는 중이지 않을까.
폐허만 수십 개씩 쓰다 만 나처럼.
아닌가. 이미 지우기 시작했나. 모르겠다.
분하지만…… 세계가 끝장나는 건 바라지 않기에
신을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디 당신들도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주시길.

저를 향한 당신의 첫 마디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사람입니까?”

당신은 사람이 아닙니까? 되묻고 싶었습니다. 검게 깜빡대는 당신은 사람이 아닌 게 너무 명백해 보여 질문이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만, 어떻게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입니까?”

당신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검고, 기다랗고,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는 불투명한 무언가처럼 보였습니다. 혹시 저승사자일까? 당신은 검은 갓도 쓰지 않았고 옷도 입지 않았고 입술이나 눈동자는커녕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입니까?”

내 이름을 몰라 사람이냐고 세 번 부른 건가. 저승사자 같은 당신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일단 끄덕거렸습니다. 자, 나를 죽음으로 데려가. 이제 이 고통에서 나를 해방 시켜 줘. 몸의 오한이 더 심해져 몸을 웅크렸습니다. 어깨가 저절로 떨려왔습니다.

“당신은 혼자 남았다. 사람은 다 없어졌어요.”

번역기를 돌린 것처럼 당신은 어설프게 말했습니다. 혼자 남았다고? 사람이 다 없어졌다고?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악산을 내려올 때 보았던 도심 쪽 크고 검은 연기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다 죽은 걸까? 그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다 태워버린 걸까? 오한으로 딱딱거리며 떨리는 턱을 겨우 절제하며 물었습니다.

“사람이…… 다 없어졌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증발했다, 완전히.”

“증발했다고요?”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봤던 도심 쪽의 검은 연기는 전부 사람들이 증발해버린 수증기였단 말이겠지요…… 문득 노인 보행기 뒤에 쌓여 있던 옷더미가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증발’ 해버리면 그런 형태로 옷이 겹겹이 쌓인 채 남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왜? 왜 모두가 증발해야만 했지? 이 세상에서 없어지려던 건 나였는데, 왜 정작 나 빼고 다 없어져야만 했지?

“사람은 이제 없다. 당신은 혼자 남았습니다. ”

2020년 제2회 장수문학상 본상 수상 ​

2024-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창(槍)』 『동제(洞祭)』​​『아직 아닐 거라는 착각』『조립 가족』​ ​출간

  

revan_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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