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에 갔었다. 욕망을 먹고 사는 카지노는 휘황했지만 어딘지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 후 도박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푼돈이 걸린 게임이 아니라 인생의 무엇을 걸고 하는 도박.
카지노에서 손님 다니엘과 딜러 한영미는 서로의 운을 놓고 겨룬다. 생모를 찾으러 부산에 온 다니엘에게 고액의 카지노 칩이란 어떤 의미일까. 다니엘은 판돈을 쓸어 카지노를 질겁하게 만들기도 하고 큰돈을 잃어 카지노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미지의 생모처럼 카지노도 미지의 장소일 뿐이다.
생모를 만나는 것은 운에 달려 있다. 카지노의 승패도 운에 달렸다. 다니엘과 한영미의 만남은 새로운 운을 향한 탄생의 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니엘은 한영미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한영미도 다니엘을 돈을 뜯어내야 할 고객이 아닌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삶의 도약을 일으킬 불꽃이 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카지노를 취재하고 딜러를 만나보았다. 카지노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 어느 곳에든 삶의 창문은 있기 마련이다.
플로어에게 호출이 왔다. VIP룸에 어젯밤 민소진과 겨룬 손님 다니엘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니엘을 모시고 온 플로어가 새벽까지 게임을 해서 피곤하지 않은지 안부를 묻고 떠났다. 1대1 게임을 원하는 손님이었다. 나는 다니엘 앞에서 8세트가 섞인 카드함을 열고 게임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샤워를 막 해서인지 뒤로 빗어 넘긴 다니엘의 머리칼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었다. 깔끔하게 면도를 했고 두 눈은 민소진만큼이나 생생하게 빛났다. 흰 와이셔츠의 손목 단추를 잠근 다니엘은 손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왼 손목의 검은색 피아제 시계가 눈에 띄었다.
다니엘은 첫 베팅으로 노란색 칩 두 개를 플레이어 공간에 올렸다. 나는 카드를 두 장씩 돌리고 오픈한 후, 두 장 카드의 합을 말했다. 뱅커 6, 플레이어 7. 플레이어 윈. 노란색 칩 두 개를 다니엘에게 건네고 다음 카드를 돌렸다. 다니엘은 주황색 칩 두 개를 올렸다. 개당 100만 원 칩이었다. 노란색 칩은 20만 원, 주황색 칩은 100만 원, 붉은색 칩은 500만 원, 자주색 칩은 1000만 원이었다.
다니엘은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교포로 보였다. 나는 업장에서 손님들의 옷과 장신구, 말투와 행동을 통해 직업과 삶을 추측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나의 그런 추정은 칩과 칩이 오가는 업장에서 검증할 방법이 없는 나만의 상상에 불과했다. 나는 내가 분류한 사람을 차곡차곡 내 머릿속 서랍에 넣어두고 휴게실에서 그 사람들의 사생활을 추측해보기도 했다. 과연 돈으로 바꿔줄까 싶은 칩만이 오가는 카지노 업장의 살벌함에 나름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내 추측은 가끔 신통하게 들어맞을 때도 있었다. 언젠가 딜러의 손에 관심이 많던 재미동포가 네일숍 사장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맞았다. 개인 가게가 아니라 뉴욕의 유명한 네일숍 체인점 대표였다는 점에서 절반쯤 맞은 셈이었다. 네일숍 대표는 카지노에서 현금을 몽땅 잃고 카드 한도까지 돈을 빼 쓴 후에 미국에서 들어온 가족에게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카지노에서 사라졌다.
다니엘은 40분쯤 게임을 한 후에 카드를 접었다. 그는 돈을 약간 잃었지만 지난 밤에 비하면 손실이라 할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얼굴을 찡그리게 하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그는 일어서면서 내 명찰에 붙은 이름을 정확하게 말했다.
한영미 씨 즐거웠습니다.
그가 악수를 청하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고 말았다. 딜러를 7년 넘게 하면서 카지노 게임을 끝내고 손님과 악수를 나눈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님이 딜러에게 악수를 청하는 일 자체가 없었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