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동쪽』은 내 청춘의 비망록 같은 소설이다. 내가 20대를 보낸 시대와 개인적 고뇌, 그리고 경험의 물무늬가 진하고 치밀하게 삼투된 소설이다. 이 작품의 출판권을 출판사로부터 되찾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내용을 다시 읽어나가며 나는 여러 번 독서를 멈추고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져 내 온몸의 세포가 20대의 그것으로 형질 변경을 하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한 번뿐 아니라 수정작업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그런 상태가 유지되었다. 소설 안에 내가 모를 에너지가 내장되어 그것을 읽을 때마다 스탕달 신드롬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아무려나 그런 에너지가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소설은 나의 의식에 접속될 때마다 강렬할 진동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20대를 보낸 시절의 시대적 고뇌와 청춘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인생의 이월가치에 대해. 시대적 배경은 변해도 인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넘겨주고 싶은 이유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생활에 대해 나는 서서히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온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때때로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대거나 면도칼로 팔목을 그어버리고 싶다는 섬뜩한 자해 충동으로 온몸에 푸른 소름이 돋아날 때도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일을 통해서라도 내가 아직 살아 있으며, 변함없이 청춘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학업을 중단하겠다는 나의 결정은 시대적인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더 이상 학교를 다니기가 싫어진 것뿐이었다. 도대체 대학원은 무슨 생각으로 진학했으며 학업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한때 미래의 청사진처럼 여겨지던 계획에 대해서도 나는 기억 망실자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나른한 좌절감 속에서 눈을 뜨는 자기기만으로 ‘시대적인 양심’ 따위를 거들먹거릴 만한 계제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명약관화, 그리고 간단명료. 대학원을 왜 휴학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주 간단히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일 터였다.
그냥, 사는 게 너무 무료하고 따분해서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1. 온몸에 푸른 소름이 돋아날 때 2. 악마처럼 살고 싶다는 꿈 3. 내가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4. 사랑한다고 절로 말하고 싶어지는 경우 5. 개기일식이 있던 날 6.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7.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8. 때로 약간의 독은 편안한 잠을 가져다 주지만 9. 개기일식의 비밀 10. 청춘이 막막하게 여겨질 때 11. 기억에도 푸른곰팡이가 피어나면 12. 내가 너를 부르는 무의식적인 힘 13. 안개에 점령당한 밤 14.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순간 15.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16. 여기가 어딘가 17. 오늘은 어제 죽은 자의 내일 18. 지금은 내가 세상을 등지는 시간 19. 떠나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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