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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리 마을회관 소극장의 불면증클럽

소설 단편

이상욱 2025-11-23

ISBN 979-11-94803-52-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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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15년 가까이 글 쓰면서 마시던 커피를 끊고 멜라토닌과 테아닌이 함유된 보조제까지 먹어봤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새벽까지 뒤척이는 게 미안해서, 조용히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눕고는 했다. 어슴푸레한 어둠과 마주한 의식이 수면과 비수면 상태를 오갔다.

언제부턴가 밖에서 짧은 고함이 들려왔다. 고함의 주인은 남자였고,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뭔가 억눌린 것이 임계점을 넘어선, 그러니까 빵빵하게 부푼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를, 주에 한두 번은 반드시 내질렀다.

아악-.

그때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지만,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딱 한 번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살폈다.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소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상했다. 고함을 들은 누군가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을.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남자에게, 그 사람에게, 혹은 잠들거나 깨어있는 우리 모두에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은 너무 어둡고 조용하니까.

그래서 소설을 썼다. 불면증은 조금 나아졌다.

기온 26.4도, 습도 88퍼센트, 7월, 금요일, 오후 9시 14분.

차에서 내리는 순간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바닐라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바닐라는 날개에 불이 붙은 나방처럼 짧은 숨을 반복적으로 토해냈다. 128킬로그램이 버틸 수 있는 온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바닐라는 다시 차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훔쳤다.

건물 입구에 <살가리 마을회관>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바닐라는 메시지를 열어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가 틀림없었다. 바닐라는 라이트를 끄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 시간보다 십오 분 정도 일찍 오기는 했지만, 막상 아무도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속은 건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딱히 방법이 없었다. 커뮤니티 모임이라는 게 대체로 이런 법이다. 허세와 기만이 판치는 곳. 바닐라는 딱 십오 분만 기다렸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린 건 정확히 십 분이 지나서였다. 90년대 발라드 모음곡을 듣던 바닐라가 어두운 실루엣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어두운 실루엣은 개의치 않고 노크를 이어갔다. 바닐라는 창문을 빼꼼히 열었다. 삐쩍 마른 남자가 눈을 찌푸리며, 당신이 바닐라냐고 물었다.

맞습니다.

왔으면 내려, 나머지도 오 분 이내에 도착할 거야.

다시 그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몸을 덮쳤다.

바닐라라고 합니다.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나요.

남자의 시선이 위아래로 바닐라를 훑었다.

사르트르. 쪽지 보낸 사람이야.

2013년 『문학의 오늘』 소설 신인상 당선

2021년 소설집 『기린의 심장』 

2021년 엔솔러지 소설집 『숨쉬는 소설』 

2024년 『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저) 

2025년 소설집 『스탠더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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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ang2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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