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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소설 중편

김성호 2025-12-28

ISBN 979-11-9480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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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13년간 살았던 곳이 대전이다. 언젠가 대전을 배경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야 그 시절을 잘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이와 ‘나’의 이별 여행은 어떤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썼다. 원래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었다. 그걸 중편으로 늘린 건 순전히 한 독자분 덕이었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여다보고 싶다고 청하셨기에. 다시 읽어보니, 못다한 이야기가 많았고 그래서 중편으로 개작했다. 그럼으로써 더 녹진히 이이와 ‘나’, 인주의 내면을 반추한 듯하다.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이 두 마디 표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맞은편에서 다가올 사람을 위해 옆을 비워둬야 하는 문장도. 가장자리에 있는 게 반드시 좋지 않은 상황인 걸까? 가장자리에 있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의 여유와 미래를 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않을까. 가장자리에 서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갈 우리 모두의 ‘이이’를 위해.

22. 이이.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이십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구태여 이이, 라고 부른다. 그게 더 짧고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그녀는 상관없다고 했다. 무엇으로 부르든 22가 22인 건 변치 않으니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진짜 22가 있고 가짜 22가 있는 건 아니잖아. 무엇이든 진짜 나잖아.

이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를 위해 22라고 남겨둘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이, 그건 내 마음이기도 하니까. 언젠가 물은 적이 있다. 22는 무슨 뜻이냐고. 명확한 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트위터 닉네임이 22였고, 나도 그래, 동의한다는 의미의 22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이이는 의미 따위 개의치도 않았지만.

오후 네 시, 우리는 대전에 도착했다. 비즈니스 호텔에 들어가 하룻밤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이는 내가 여독을 푸느라 자는 내내 영화 대사를 번역하고 자막을 달았다. 그러지 않으면 한 시라도 삶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이이는 영문학과를 졸업한 아마추어 번역가였다.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오는 아마추어 단편 퀴어 영화들에 자막을 달아 재업로드 하는 게 그녀의 취미였다. 간혹 불법 영상으로 간주되어 비공개 처리되는 일도 허다했다. 돈을 받지도 않았지만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내 눈에 든 퀴어 영화라면, 내 손이 닿는 한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뜨려야 해. 난 돈을 받지도 않아. 허락을 구하지도 않아. 그건 그렇게 퍼뜨려야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들의 몫이고 책임이지.

그녀는 말했다. 논리가 이상했으나 나는 굳이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찾은 자신의 존재 의의라고 여겼으므로. 대부분의 퀴어들이 그렇듯, 그녀도 정체성과 자아 찾기에 매몰된 퀴어였다. 그건 일종의 유희였고 놀잇감이었다. 문제는 나는 그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5-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사물연습』​『것』『퀴어문학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출간

 

kimwriter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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