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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재생속도

소설 단편

조재민 2026-01-04

ISBN 979-11-94803-50-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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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를 많이 본다.
어느 순간부터는 1.5배속으로 보더니, 이제는 기본이 2배속이다.

그런 적이 있다.
늘 2배속으로만 보던 유튜버의 영상을 정상속도로 틀었을 때,
그 사람의 느릿한 말투가 너무 낯설어서 깜짝 놀랐던 순간이.

easy, fun, fast.
얼마 전까지 회사 컴퓨터에 큼지막하게 붙여놓은 글귀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하자는 자기 주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easy, fun, fast를 찢어버렸다.
10년 동안의 회사생활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직후였다.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속도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당한 속도라는 게 있을까.
나에게 맞는 속도라는 게 있을까.

그래도 이 소설을 쓸 때는 0.1배속으로 썼다.
물론, 읽을 때는 1.5배속으로 읽어도 된다.

과연 오빠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오빠의 주장은 이랬다. 맨날 유튜브를 2배속으로 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의 속도가 2배가 되었다는 것. 자신의 뇌가 장시간 2배속 영상에 적응하면서 뇌의 인지 전달력이 왜곡된 것 같다나 어쨌다나.

“나의 뇌는 실제 시간을 인코딩하지 못하고, 영상의 속도를 그대로 현실에 덧씌운 거예요. 내 눈앞의 세계가 곧 영상 재생창이 된 셈이죠.”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빠르게 두 번째 영상을 재생했다. 물론 이번에도 2배속으로.

두 번째 영상에서 오빠는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표정이 달랐다. 첫 영상에서 무표정했던 오빠가 이번엔 약간 들떠 있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고, 손끝으로 공기를 그리며 말을 했다.

“어쨌든 회사는 가야 되잖아요.”

나는 모니터 앞에서 숨을 참았다. 오빠가 웃는 것 같기도,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세 살 아기 손 잡고 걸어가는 아주머니에게 따라잡혀요.”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멈췄다. 손끝이 허공을 더듬다가, 마치 무릎 위로 떨어지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 나는 그 속도 차이를 보며 이상하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댓글창 (공감순)
↳ 아몰라: 근데 다들 이거 왜 보고 있어요?
↳ 내인생: 사실 내 인생은 4배속으로 움직이거든.
↳ 출근지옥러: 형이 느린 게 아니라 육아맘들이 빠른거;;
↳ 냉소주의자: 결론: 형, 걍 운동 좀 해라. 지각 핑계 대지 말고ㅋㅋ
↳ 철학충: 이거 그냥 월요병 얘기 아냐. 월욜에는 원래 세상이 빨라 보여.
↳ 응원러: 스케이트장에서 혼자만 맨발이 된 것 같다는 비유가 이상하게 슬퍼요~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짐』『X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보고서』『롯소코 도파민네이션』『꼬리 치지 마라』 ​​출간 

 

withsun0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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