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강릉으로 친구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소설 작업 겸 휴가 차 간 것이었다. 숙소 근처 카페를 향해 걸었다. 걷는 도중 도로변이 시야에 스치다 봉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가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친구가 “무덤이네.” 말했다. 그제야 팻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무연고 묘지’라는 안내였다. 카페가 있는 곳까지, 무연고 묘지는 계속 이어지다 끊겼다. 카페에서도 애써 그곳이 내다보이는 창가자리를 피해 앉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무연고’라는 말은 잊을만 하면 머릿속에서 맴을 돌았다. 연고 없이, 인연이 끊어진 채 홀로 남은 이들. 그들이 모여있는 그 무연고 묘지는 어딘지 섬뜩하면서도 쓸쓸했다. 홀로 남았지만 죽어서 묘지를 통해 무연고로 연결된 이들. 그들의 삶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았다. 이 작품은 거기서 비롯된, 그들을 향한 작은 추도사다.
도로 건너편에 커다란 묘지가 있어요. 거기서 놀지 말랬는데도 기어코 거기서 놀아서 그래요.
여자는 말했다.
나는 짐짓 놀라 물었다.
묘지요?
아까 보니까 무연고 묘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데가 있는 줄 알았으면 여기 오지 않는 건데.
여자는 불평을 하다 서둘러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 객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다시 침대로 가 누워 C호텔 후기를 찾아보았다. 몇 개의 후기에도 그런 얘기가 없기에 605호 여자가 착각한 건가, 했지만 한 블로그 여행 후기에서 묘지라는 단어를 볼 수 있었다. 다른 후기도 찾아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꺼림칙했다.
나는 창가로 건너편을 내다보았다. 묘지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다. 그저 풀숲 중 하나가 묘지이겠거니, 짐작할 따름이었다. 묘지, 그것도 무연고 묘지라는 표현이 주는 음산한 분위기에 불현듯 살갗의 털이 곤두섰다. 저기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연고도 없이 낯선 사람 손에 의해 땅에 묻힌 사람들이다.
문득 여동생이 생각났다. 나는 사라진 그 애도 저기 묻혔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에 점차 물들었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