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 환상 / 관계 서사가 중첩된 심리적 환상소설.
세계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인식이 이상해지는 환상.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비와 사고의 연결-비와 존재 기원의 연결.
감각 중심의 서사와 모호한 경계 설정을 통해 존재의 기원을 탐색하는 작품.
고등학생이었을 때 스스로가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한 인물에 대해 구상했다. 소설로 옮겼으나 만족스럽지 않아 그대로 마음 한 구석에 밀어둔 채 다른 글을 썼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그 이야기가 찾아왔고(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가 찾아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다시금 써내야만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은 태어났다.
작품의 비화는 늘 흥미롭기 마련인데, 정작 비화의 당사자가 되면 가슴 한쪽이 아리고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발상이 완전한 소설로 이어지기까지는 몇 번의 탄생과 죽음이 거듭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작가는 의미를 건져내 세상에 내보이는 것뿐이고. 이 작품도 그렇다. 작가의 말을 쓰는 지금은 첫눈이 내릴 시기이지만, 어쩐지 비가 그립다. 딱 하루만, 온전히 비가 내리는 것을 감상하고 싶다.
유월의 어느 날 카페에서, 너는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비 내리는 거 볼래?
네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을 믿었다. 나를 낳은 건 비다. 최초의 기억이 비가 내리는 동안 누워있는 것이므로 그렇다. 생물학적 부모는 찾을 수 없었고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의 우연성이 낳은 사생아라고 확신했다. 대개 나 같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원을 찾게 된다는데, 내겐 그런 본능 따위 없었다. 본능을 무시하는 본능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너를 통해 부모랄지, 나를 낳은 자들을 찾을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진지한 내게 너는 단지 자신이 외출하는 날이면 늘 비가 온다고, 그래서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실망했다. 너는 일단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이 50대 중후반의 아저씨였다. 데이팅 앱에서 처음 대화할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너라고 불렀다. 네가 나이를 밝혔을 때 나는 너를 차단하려다가 대화가 고프고 외로워 친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처음처럼,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친구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기에 내건 조건이었고, 너는 그것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니, 난 비 안 좋아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이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너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마음이 급해졌는지 나는 소설을 써, 라고 화두를 바꿨다.
소설?
나는 화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설이란 글이고, 글은 나도 쓰는 거니까.
2025-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사물연습』『것』『퀴어문학은 취급하지 않습니다』『이이』 『공』 『무연고 휴가』『로보, 나를 물어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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