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잡아먹을 시간』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욕망을 생태계의 냉혹한 질서에 비추어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는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질서를 인간의 몸과 감정에 겹쳐 놓으며 사랑과 폭력, 피해와 가해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 보여준다.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어떻게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변하는지, 상처받은 사람이 어떻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는 외부자가 아니라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질서가 인간의 몸과 감정 속에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폭로당하는 존재다. 특히 주인공의 내면을 선악의 도식으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는 상처받은 피해자이면서 타인을 망가뜨리고 싶어하는 가해자다.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제압하려 한다. 이 모순은 주인공을 도덕적 판단의 대상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상처를 재생산하는지 추적하게 한다. 『너를 잡아먹을 시간』은 상실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끝끝내 극복되지 않는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직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에게 되묻는다.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일과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는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행이다. 너도 아파서.
강은 내게 신비롭고 무섭고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나고 자란 고향집에서 20미터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넓은 하천이 펼쳐졌다. 오랜 가뭄에도 끄떡없던 깊은 수심의 물이 넘실대던 그곳은 아침부터 눈뜨자마자 달려 나가는 나의 놀이터였고 아빠와 같이 버들치를, 엄마와 함께 다슬기를 잡는 사냥터였다. 퍽퍽한 타인을, 이별한 당신을 잊기 위해서 달려가 푸르고 잔잔한 냄새를 맡으며 쉬어가는 장소였다.
막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는 강으로 자꾸만 회귀하게 됐다. 어쩌면 무엇인가를 번번이 잃고 또 거듭 잃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이 소설을 썼다. 그러면서 알아차렸다. 견디는 건 참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일이란 사실을. 강이 내게 온몸으로 보여준 투명한 그 진리는 마르지 않는 위로였다.
깊어질수록 어둠이 강해졌다. 음습하지만 신비롭기도 한 판타지 영화의 숲속 미로 같았다. 앞서서 잡아끄는 은수의 손바닥과 내 팬티도 축축해져 오고 있었다. 이쯤 들어왔으면 됐다 싶을 만큼 어둠이 포식한 곳에서 우리는 멈췄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높이의 이름 모를 나무 기둥을 양손으로 붙잡고 섰다. 내 뒤에서 은수는 눅눅한 숨소리를 몰아쉬며 치마를 걷어 올렸다. 민달팽이처럼 질 속으로 쑤욱 미끄러지는 그의 성기. 유달리 미끌미끌한 날이었다. 젖은 숲에서도, 부푼 달팽이에서도 끈적한 진액이 끊임없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먹으면서, 먹히면서도 끈끈하게 뿜어내는 체취. 교미하는 포식자들의 흥분한 신발 밑창에 마구 짓이겨진 풀에서도 싱그러운 생채기 냄새가 진동했다.
어쩌면 그날 이후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에게서 무척추동물 맛이 난다고 느꼈던 게. 그 말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은수를 보며 수목원에서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짜릿함보다는 끈적거림으로 각인되었다. 은수가 더운 김을 내뿜으며 귀밑을 핥으면 마치 민달팽이가 목덜미를 샅샅이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께름칙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물컹한 그것을 확 떼어내 발로 콱 밟아버리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이었을 것이다. 살점이 뭉개져 점액질이라는 형체로만 남게 되도록, 무슨 수를 써도 절대 복원할 수 없도록 망쳐버리는 것. 솔개가 멸종되면 무자치가 목숨을 건지듯 고수가 사라진 세상에서 하수는 자동 업그레이드되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이상했다. 은수의 얼굴이, 말투가, 몸이 싫어질수록 그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불러들여 섹스해야 한다는 충동이 강해졌다. 그 이끌림은 설명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욕망 같은 것이었다. 쉐어룸에서 나는 매일 삼시세끼를 먹어 치우듯 세 번씩 그의 팬티를 벗겨냈다. 단단한 달팽이 껍질을 떼 내는 것처럼 드로즈를 까뒤집으면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어느새 갈망하던 눈빛으로 돌변했다. 절정으로 오르고 또 오르고 따분해질 만큼 오르면, 마침내 그때 내가 그를 모조리 잡아먹어서 발가락 하나까지도 남아있지 않도록 말끔히 치워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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