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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여진씨

소설 단편

추승현 2021-07-22

ISBN 979-11-920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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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이 아닌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산다. 그것을 현실이라 부르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며 자기위안을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갈림길 앞에 서서, 목적지가 명확하고 평탄하고 넓은 길 대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수풀과 잡초가 무성한 그 길은, 걷다가 거미줄을 뒤집어쓰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편치 않은 오솔길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길을 간다.

여진씨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을 때, 그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길이 맞는 것인가? 나는 지금 실수하는 것이 아닐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뇌하면서도, 여진씨는 그 길로 들어섰고 지금도 꿋꿋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이라도 크고 넓은 대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그녀는 나아가는 편을 선택했고, 나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언젠가 그 길의 끝에서, 원하는 세계와 조우하기를.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굳이 회식에 참석하라고 하는 이유가 정말 저를 위해서인 게 맞아요? 저한테 이 회사에서 무슨 앞날이 있겠어요. 제 생각에는, 이런 말씀 외람되지만, A팀 직원들만 앉혀놓으면 술자리가 완전 썰렁할 거고, 그런 건 사장님 보기에도 안 좋을 법하니까 굳이 계약 직원들을 동원하려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 건 팀장님한테나 좋은 거 아니에요?

팀장이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말문이 콱 막힌 듯 초점 잃은 눈으로 입만 벙긋거렸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후 그녀는 세상에…… 나 참…… 기가 막혀서…… 하고 중얼거렸다. 머리를 굴리는 티가 역력했지만 그녀는 여진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여진 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여진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팀장이 계약직 처우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는 있었겠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리라.

저는 여기에 봉사하러 온 게 아니에요.

봉사라니.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우리가 월급을 떼먹기를 했니. 여진 씨도 계약서 쓰고 들어온, 엄연한 직원이잖아. 회사 돈으로 밥을 사준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네. 엄연한 임시 직원이죠. 미래에 대한 플러스알파가 없는 대신, 계약서에 쓰인 일 이상은 할 필요가 없는. 저는 그게 계약직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정해진 일만 하면 된다는 거. 회사가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되지 않나요? 그 이상이 필요하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왜 자꾸 A팀이 해야 할 일을 시키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퇴근하고 나면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해요. 저 진짜 바빠요, 팀장님.

팀장의 얼굴이 목까지 빨개졌다. 여진은 그녀가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당선

 

arcadian21@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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