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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소설 단편

권제훈 2021-07-22

ISBN 979-11-920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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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해서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를 만난 적이 있다. 한여름이었고 갑작스러운 폭우였다. 밖에 있으면 1초 만에 홀딱 젖을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안개마저 낮게 깔리는 바람에 시야가 매우 좁았다. 차선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거리에 앞차가 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풍경에 긴장해서 운전대를 꽉 붙잡았다. 옆 차선에선 다른 차들이 끊임없이 물줄기를 튀기며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거짓말처럼 비가 멎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가드레일, 표지판, 고속도로를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의 잔상이 내 곁에 오래 머무르다 소설이 되었다. 어쩌면 그 순간 내가 빨려 들어간 다른 시공간, 다른 우주가 바로 이 소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오, 마이, 갓!”

남자는 갑자기 도를 깨달은 것처럼 흥분했다.

“제가 왜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을까요? 아내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이 게임을 이끌어 갈 리가 없다고요. 지금 아마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도망치고 있을 거예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남자가 안전벨트를 재빨리 맸다.

“안전벨트는 왜…….”

“찾으러 가야죠. 아마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남자가 신나서 목소리를 높이자 여자도 덩달아 옥타브가 높아졌다.

“죄송하지만 이 차는 제 차라고요.”

“아가씨도 같이 가요. 아가씨는 남자친구를 찾고, 나는 아내를 찾고.”

“남자친구는 도망간 게 아니에요.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이라고요.”

“지금 뭐가 보여요? 아무것도 안 보이죠? 남자친구도 저처럼 길을 잃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게 더 위험해요. 갓길로 달리는 차가 이리로 오면, 꽝!”

남자가 두 주먹을 서로 맞부딪쳤다.

“여기 이렇게 있지 말고 가까운 휴게소에 같이 가요. 혹시 알아요? 제 아내와 아가씨 남자친구가 태연하게 커피라도 한잔하고 있을지.”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청년예술가지원 사업 선정

2022년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

 

gaung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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