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CCTV 묵시록이다. 이와 같은 스타일의 소설을 쓰고자 한 이유는 내가 관통해온 ‘세기말’을 나의 자의사와 무관하게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20세기로부터 21세기로 바뀌어가는 그 과도기적 불구덩이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까마귀떼를 목격했다. 그들은 CCTV가 설치된 모든 무대에서 몸부림치고 절규했다. 그때 그 배우들은 20세기를 온몸으로 연기했지만 안타깝게도 21세기가 된 지금은 CCTV 그늘에서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CCTV는 무의식적이지만 시종일관 그것은 인생무상을 기록하는 무생물적 잔혹함을 보여준다. 세기말을 신나게 관통해왔지만 결국 21세기는 무한대로 찍고 찍히는 광학의 지옥이 되어버렸다. 찍힌 사람도 찍은 사람도 서로에게 절규한다.
"그때 왜 그랬어요?"
“마지막 부분?”
“남자의 눈이 클로즈업되는 마지막 장면요. 그걸 여자의 루즈 칠한 입으로 바꾸고 남자가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면서 페이드아웃…… 그렇게 간다나 봐요.”
“지랄들하고 자빠졌네. 안 그래도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마구 잡아먹히는 세상인데…… 지겹다, 정말 지겨워.”
“근데 어젯밤엔 어디서 뭘 했기에 이렇게 그로기예요? 휴대폰은 아예 꺼두고…… 집에 들어간 것도 아니죠?”
“집엔 안 들어갔어. 친구들하고 포커하고 술 마셨지 뭐. 지금 몸이 반은 죽어 있어. 반만 살아서 운전하고 있는 거라구.”
“그러고도 집에서 안 쫓겨나요?”
“쫓겨날 정도면 스스로 나오지, 왜 사니. 이렇게 사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일일이 간섭까지 받으면 죽어버리지 왜 살아?”
“정말 대단해요. 실장님이 아니라 실장님 사모님요.”
“그래, 정말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여자야. 소야는 나하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여자라구. 하기야, 대단하니까 나 같은 놈하고 사는 거겠지 뭐.”
“전에 직원들하고 집에 갔을 때, 내가 받은 느낌으론 대단히 기교적이고 기술적인 여자 같았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아무리 다급하고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 여자 있잖아요.”
“간단히 말해, 임마. 구미호라 이거지?”
“아이 참,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찍어버리면 내가 어떻게 더 말을 해요? 근데 구미호보다 더 높은 단계는 뭐죠?”
“십미호.”
“아무튼 실장님이나 사모님이나 정말 대단해요. 스물여섯인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수준은 못될 것 같아요. 난 몇 미호나 될까요?”
“넌 이미 육미호야, 짜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오미호라구. 근데 집에 뭐 먹을 것 좀 있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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