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애를 먹이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어렵지 않게 미끈하게 빠지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잘 빠졌다는 소리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미끄러져 나와 버렸다는 말이다.
그럴 땐 기분이 좋을 만도 한데 오히려 반대다. 조탁. 이른바 갈고 닦는 과정(여기에는 얼마간의 예능적 고통이 따르지 않던가)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학적 요소가 희박한 타작일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1994년에, 지금은 없어진 문예지 <문학정신>에 발표된 작품인데, 아마도 당시 주간이었던 하재봉 시인이 급히 청탁했음에 틀림없다. 그늘 늘 급히 청탁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럴 때 신인이었던 나로서는 고민 없이 얼른 쓸 수 있는 소설거리를 찾아 부랴부랴 쓰곤 했다.
그렇게 불쑥 나온 소설이니 좀 숨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길 바랐다. 소설을 쓰다 보면 자주 이런 상황이 생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탁에 임했고 소설을 쓴 거긴 했지만 솔직히 남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운 작품이 분명 있다.
그런데 웬걸. 이 소설이 발표 당시 꽤나 화제에 올랐고 이런저런 매체에서 좋게 언급해 주었다. 급기야 육상효라는 젊은 영화감독이 영화로 만들겠다고 해서 윤동환이라는 배우가 주인공 역을 맡은 <터틀넥 스웨터>라는 중편영화가 되었다. 영화에도 중편영화라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뒤 중앙일보사에서 단편선집을 출간했는데 편집팀에서 표제작을 <그녀의 야윈 뺨>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겼다. 그제야 나는 이 작품이 간신히 타작은 면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숨기고 싶은 자식이 오히려 효도를 해서 나를 당황케 한 작품이 그 뒤 또 있었는데, <명두>가 그랬다.
“너 군대에 있을 때 말야. 한 달에 한 번꼴은 면횔 갔었잖아. 그때마다 내 한 달 월급 다 썼던 것 기억해?”
나는 밤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니 월급이 적었다는 걸 말하려는 거니?”
그녀는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외박할 때마다 날 어떻게 해보려고 너 참 무던히도 애썼지. 사실 말야, 널 만나러 떠날 땐 웬만하면 거절하지 말아야지 했었어. 근데 일단 잠자리에 들면 몸이 막 사려지고 안되더라구. 나도 사실, 속이 많이 상했어. 한번은 니가 밤을 꼬박 새우면서 나를 보챘던 적이 있었어. 그날은 나도 참 많이 힘들었는데, 어쨌든 역시 성사를 못 시키고 말았지. 이튿날 그 민박집 아주머니가 나보고 뭐랜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골목 앞에서 누군가가 길바닥 위에다 토하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그의 등을 성의 없게 툭툭 두드렸다.
“글쎄 그 아줌마 이러더라구. 츠녀도 참 모지락스럽더구마, 나까지 애가 타 죽을 뻔했잖소.”
그녀는 킬킬킬 웃었다.
“너 참 많이 변했어. 이러지 않았는데.”
나도 허허허 웃었다.
“아아, 오늘 되게 재밌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2층 객실에 들어가 번갈아 손과 얼굴을 닦았다. 무슨 여관이 고려대학교처럼 생겼냐고 그녀가 물었다. 석조건물인 데다, 계단은 낡고, 복도가 어두운 여관이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면 여관주인에게 물어야 하는 거냐 아니면 고려대학 총장한테 물어야 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잘 채비를 했다.
1957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별명의 달인』 『아닌 계절』 등과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내 목련 한 그루』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동주』 『타락』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등이 있으며,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인생은 깊어간다』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