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형무소」는 신비스런 에너지에 사로잡혀 쓴 소설이다. 내 평생의 화두인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 열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 소설은 갑작스럽게, 거짓말처럼 씌어졌다. 그래서 내가 쓴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는 소설이다. 요컨대 읽을 때마다 낯선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이런 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거야 말로 인간의 고뇌와 우주적인 에너지가 합일을 이룰 때나 가능한 일이다. 작가들이 농담삼아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하는 순간, 그런 걸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런 순간은 항상 오는 게 아니니 '쥐어짜는 소설'을 쓸 때 작가들은 절망하고 자학한다. 아무려나 이것이 내 소설이라는 현실성은 언제나 낯설지만 그런 이유로 이것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소설 중 하나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소설을 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3년 동안의 교화 기간 중 나를 괴롭게 만든 또 한 가지 교육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주입식 교육이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나는 머리로도 몸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교화관들은 그것을 명쾌하게 보여 주지도 못하고 느끼게 해 주지도 못했다. 날이면 날마다 사랑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치켜세웠고, 그것을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침을 튀겼고, 그것이 없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으르렁거렸을 뿐이다.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니 아마도 그들이 나에게 마술을 가르치려는 모양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그들이 똑같은 말을 오직 입으로만 되풀이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그것이 말도 되지 않는 ‘뻥’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어느 날 키가 작고 끔찍스럽게 못생긴,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사랑’을 적용해 말하자면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여자 교화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교화관님, 사랑이 뭐죠?”
“이런! 지금까지 도대체 뭘 배웠어?”
“교화관님마다 말씀하시는 요지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린 질문입니다.”
“흠,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사랑이란 게 워낙 넓고 크고 높은 거니까 말이야. 그럼 내가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사랑이란…… (잠시 눈을 감고 황홀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이윽고 눈을 뜨고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래, 사랑이란 서로 좋아하고 아껴 주고 감싸 주는 거야. 그런 게 진정한 사랑이지.”
나는 하마터면 웩, 하고 오장육부 뒤집히는 소리를 낼 뻔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최초로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요컨대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터무니없는 감정 과잉과 근거 없는 오버액션의 총화였다. 좋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정도 이상의 관심을 보이고 육체적인 구속력을 행사한다는 게 말이나 될 일인가.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의 교화 과정이 점수로 환산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일정한 점수가 채워져야 교화 과정이 끝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으며 사랑에 대한 그들의 맹신을 비웃어주었다.
“그럼 내가 교화관님을 사랑해도 되나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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