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마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저녁, 눈과 램프와 여자가 있는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각 시대의 성의 사회사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성을 통하여 각 시대의 이면을 볼 수도 있겠고, 또 그 시대를 통해 성의 의식 변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저녁, 눈과 램프와 여자가 있는 풍경을 통해.
소설에 등장한 누이들을 위하여 이제 내 마음에 또 하나의 등을 단다.
어느 세월, 어느 길목,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그날도 눈이 왔다 오늘처럼. 너 서화리로 왔던 날도.”
“우리 지금은 몇 살이지?”
“서른넷.”
기숙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되는 나이가 된 거지?”
“그래.”
“그때 네가 자꾸 내 손을 만져주던 게 생각나. 내 손을 끌어올려 네 얼굴을 만지게 했던 것도 생각나고. 그땐 참 두려웠어. 이제 가면 돌아오지도 못할 텐데 그 낯선 곳에 어떻게 가나 하고…… 그게 무서워서 너한테 갔던 거야. 널 보고 가면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
“지금도 그래. 그때만큼 막막한 건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시작은 했지만 당장 이 가게는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도 아니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전화를 했던 거야. 너를 만나면 그때처럼 내 마음 안에 네가 잔디 한 장 떠 줄 것 같은 게…….”
“기숙아.”
“……”
그렇게 그 겨울 로코코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잠이 깨었을 때 나는 이쪽 소파에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고, 기숙이는 맞은편 소파에 어젯밤 그대로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나는 담요를 걷어 기숙이에게 덮어준 다음 내 마음 안의 램프에 불을 밝히듯 탁자 위의 커다란 양초에 불을 밝히고, 천정의 불을 껐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 서서 오래도록 기숙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나무』 『워낭』 『벌레들』(공저) 등 여러 작품이 있다. 동리문학상, 남촌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lsw8399@hanmail.net
1968년 겨울, 램프 속의 여자 1 1968년 겨울, 램프 속의 여자 2 1978년 겨울, 슬픈 직녀 1 1978년 겨울, 슬픈 직녀 2 1988년 겨울, 로코코 거리의 여자 1 1988년 겨울, 로코코 거리의 여자 2 1998년 겨울, 어린 누이를 위하여 1 1998년 겨울, 어린 누이를 위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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