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어둡고 암울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실제로 내 초등학교 동창중에 평생 행불자로 산 인물이 있었다. 기말고사 때마다 나와 일이등을 다투던 친구였다. 그 친구 때문에 나는 초딩 때부터 날밤 지새우는 야행성 인간이 되었다. 그가 군에 입대할 무렵 갑작스럽게 행불자가 된 건 정말 큰 충격이었다. 나는 평생 그의 소식에 귀 기울였지만 한두 차례 소문을 들었을 뿐 오늘날까지 그의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다.
태양계의 화성, 지구의 화성, 정조의 화성,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지니고 사는 마음속의 화성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는 바람이 떠미는 대로 무작정 걸음을 옮겨놓는다. 뉘엿뉘엿 해가 떨어지는 서쪽으로 길이 열려 있다. 푸른 보리밭을 지나자 왼편으로 넓은 개활지가 나타난다. 그곳으로 은빛 석양이 내려앉고 있다. 물이 빠져나간 펄 너머로 언뜻언뜻 작은 돌섬이 고개를 내민다. 화성으로 가면 화성이 사라진다, 화성으로 가면 화성이 사라진다……. 나는 정신 나간 인간처럼 연신 중얼거리며 걷는다. 내 말이 바람에 실려 쏜살같이 지구를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윽고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차량 통제소가 나타난다. 때마침 관리인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그곳이 제부도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는 우두커니 섬을 건너다본다. 갈 수 없냐고 내가 묻자 밤 9시 이후에나 바닷길이 열린다고 관리인은 말한다.
나는 행로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개펄 쪽으로 돌아선다. 스러지기 직전의 낙조가 찬연한 빛을 내뿜어 펄이 온통 은쟁반처럼 반짝인다. 나는 주변에 밀집한 횟집과 바지락 칼국수 집을 지나치며 낙조에서 내내 눈길을 떼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대찬 동작으로 나의 팔을 낚아챈다.
“아저씨, 너무 춥고 외로워 보인다. 이 얼굴 좀 봐. 그냥 두면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아. 우리 집에서 나하고 소주 한잔하자. 이층에 바다 쪽으로 난 따뜻한 민박도 있어. 가자, 응?”
나는 낙조를 등지고 선 여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한다. 단지 가녀리게 갈라지는 음성과 검은 실루엣에 이끌려 낯선 공간으로 이끌려갈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화성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화성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펄이 내다보이는 창쪽 자리에 앉아 소주를 마신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알 수 없는 삼십 대 중반쯤의 여자가 내 옆에 앉아 시종 술시중을 든다. 술시중을 드는 게 아니라 술을 따라주고 자신도 함께 마신다. 혹한의 평일이라 손님이라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나만 바람에 떠밀려 그곳까지 온 모양이다.
낙조는 빠르게 떨어지고 이내 어스름이 몰려온다. 주변의 다른 횟집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녀는 실내의 불을 밝히지 않고 앉아 찔끔찔끔 눈물을 짜기 시작한다. 남편인가 애인인가, 아무튼 남자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흘려듣는 게 아니라 그녀의 말이 나에게 접수되지 않는다.
함께 앉아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먼 행성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부터 여자는 웃음이 헤퍼져 제가 말하고 제가 웃어대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한다. 그사이 여섯 병째의 소주가 비워진다. 일곱 병째의 소주가 반쯤 비워졌을 때 그녀는 나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 허무에 찌든 목소리로 말한다.
“겨울에는 차라리 몸을 파는 게 나아. 바다가 갈라지고 닫히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해. 차라리 여길 떠나 바다처럼 가랑이를 벌렸다 닫았다 하며 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정말이지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것도 아니라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길게 한숨을 내쉴 때 나는 어둠 속에 가라앉은 심연의 섬을 본다. 그 섬을 향해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연다. 하지만 아무리 중얼거려도 그녀는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와 나 사이의 우주적 거리가 안타까워 나는 어깨를 흔들어보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녀와 내가 가까워지는 것보다 지구와 화성이 가까워지는 게 훨씬 빠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5만 9000년을 다시 기다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손을 내저으며 안간힘을 다해 말한다.
“나는 화성으로 가야 해. 거기까지 가야 내 인생으로 복귀할 수 있어. 그런데 화성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여기가 화성의 끝이라고 해서 왔는데…… 아직도 나는 화성을 보지 못했어. 당신들이 감추고 있는 화성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이젠 나도 지쳤으니까 제발 좀 보여 줘. 제발 좀…….”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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