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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편

박상우 2021-09-02

ISBN 979-11-9201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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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열혈남아를 위하여

이재명李在明이라는 이름을 꽤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다. 스물둘에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키고, 스물셋에 교수형에 처해진 아름다운 열혈남아. 내가 그에게 사로잡힌 것은 단지 스물둘, 스물셋이라는 나이 때문이었다. 그 나이가 나를 여러 번 울렸고, 그 나이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절망했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열혈청년이 우리 민족의 참담한 역사 속에 파묻혀 있었을까.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초상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 한 명의 후손도 없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기록과 자료는 참담할 정도로 부실하고 부정확했다.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결국 엉뚱한 일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월권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의 자료들을 비교 검토하고,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는 일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미안하지만, 미안하게도, 미안하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열혈청년이 어째서 죽은 뒤까지도 이리 외롭고 고독하게 방치되어야 하는가.

등장인물들이 모두 평안도 출신들이라 사투리 구사를 시도하다 포기했다. 현재의 우리 언어감각으로는 지나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괄호에 뜻을 풀어주어야 할 정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많다는 것, 그리고 다루어야 할 내용이 어차피 민족정서에 호소해야 할 것들이라 특정 지역의 사투리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는 것―그것이 사투리 소설 혹은 평안도 소설을 만들지 않은 나름대로의 이유이다.

아름다운 열혈남아 이재명과 함께 보낸 시간은 참 행복했다. 나는 100년이 넘은 그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복사해 벽에 걸어놓고 작업했다. 그것이 이 책의 표지가 된 사진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과 단호한 의지가 돋보이는 사진…….

작품은 끝났지만 그는 계속 나와 함께 머물 것이다. 그가 머무는 게 아니라 그의 정신이 한 자루의 칼이 되어 나를 스스로 경계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뜻으로 칼을 쓰고 칼로써 뜻을 펼친 사람이다. 요컨대 그가 곧 칼이라는 말이다. 짓물러터지는 세상, 나도 그처럼 칼이 되고 싶다.

고문과 심문이 끝나고 정식 기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밤마다 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함께 있지 못했지만 나는 그의 억울한 심정과 분노를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었다. 모든 걸 걸고 거사를 위해 진력했건만, 결국 그에게 남겨진 것은 실패의 멍에뿐이었다. 철석같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인간이 다시 살아났으므로 기쁨 뒤의 절망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찌 그런 불운이 나의 운명에 깃든 것일까, 그는 밤마다 독방의 벽에다 머리를 부딪치며 오열했다.

그의 오열이 들려올 때마다 나도 증거보관실의 음습한 어둠 속에서 전신으로 울었다. 칼이 울면 공기가 파동을 일으키고, 그것이 연쇄적으로 번져나가 이윽고 그가 있는 독방에까지 전해질 터였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실패도 성공의 일부분이다, 그러니 목 놓아 울지 마라. 실패마저 거둘 줄 아는 칼이 진정한 칼 아닌가.

그가 실패한 원인은 너무나 자명했다. 칼을 써야 할 순서가 뒤바뀐 때문이었다. 칼은 오직 한 번, 치명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네이버: 박상우 공간

 

1. 칼의 탄생
2. 살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3. 내가 칼이다
4. 다음 생에서도 또 만납시다
5. 나는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6. 나는 감옥에서 죽을 몸이니
7.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사랑
8. 사산하는 봄
9. 무슨 악연인가
10. 누가 그를 기억하는가
부록1. 이재명에 대한 의문
부록2. 이재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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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아름다운 열혈 남아, 이재명 열사를 만나다 초록달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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