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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이 뜨는 풍경

소설 단편

박상우 2021-09-02

ISBN 979-11-9201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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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바다와 산과 달과 소주와 혼자 있음으로 빚어진 소설이다. 기이하지만 이 소설의 화두가 나에게는 ‘동해안’으로 잡혀 있었다. 동해안을 무수하게 오가며 어른거리던 희미한 이미지에 구체적인 이야기 골조가 생기고 피와 살이 생성되는 데에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그냥 만들어지는 소설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에 내재된 필연은 나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 아픔의 뿌리를 나는 모른다. 희미하지만 아직도 그것이 사랑일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물론 착각이다.

6월의 마지막 날, 남자와 여자는 아쉬운 송별의 시간을 가졌다. 7월 첫날, 여자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동해안으로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최초로 함께 밤을 보냈다. 남녀가 밤을 함께 보내는 게 이상한 일이냐고 남자가 물었을 때, 모텔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우두커니 서서 여자는 무척이나 서글픈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을 다잡아먹고 그들만의 공간을 확보한 뒤에도 남자와 여자는 도무지 자연스러워지지 못했다. 어설프게 머뭇거리다 가까스로 남자가 여자를 안았을 때,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가, 여자는 남자의 움직임에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섹스가 끝난 뒤, 어둠이 술렁거리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여자가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자하고 자는 거…… 이번이 두 번째예요.

―그런 말을 왜 하지?

―내가 불감증 환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나 해서요.

―음, 수정 고드름 같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긴장한 때문이겠지.

남자는 여자를 가슴에 안으며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여자의 굳은 몸이 비로소 이완되는 것 같았다. 시나리오고 뭐고 이대로 석상처럼 굳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남자가 농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남자의 가슴에서 풋,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자를 가슴에 안은 채 남자는 고개를 들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서서히 아침이 오는 조짐, 어둠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 온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때 여자가 얼굴을 들고 불현듯 남자에게 물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도 사랑해보지 못했다는 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네이버: 박상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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