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소설 단편

구효서 2021-09-02

ISBN 979-11-975915-5-6

  • 리뷰 0
  • 댓글 0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그런 나비가 있다.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라고도 한다. 떠들썩한 것도 모자라 팔랑거린다. 정신이 없다. 그런데 유리창이라고 하면 왠지 도시를 떠올리게 할 것 같아서 제목을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로 했다. 나비의 날개 끝부분에 검은 테를 둘러서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라고 한다.

고향친구들은 좀 요란스러운 데가 있다. 고향 말의 강세가 이북의 연백 사투리를 고스란히 닮아서 유독 더 그럴 테지만 워낙 깨복쟁이 친구들의 대화라는 게 어디서나 허물이 없는 것이다 보니 떠들썩하고 야단스러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칭찬도 디스형식을 띠어 주어야 칭찬답다고 여기는 형편이니까. 소설의 대화가 다소 거칠지만 실제 강도를 4분의 1쯤으로 줄인 것이다.

자주 만나는 여덟 고향 친구가 소설에서처럼 상조회를 묶었다. 실감을 내려고 친구들의 실명을 써버렸다. 부모님이 연로하고 자식들이 성인이 되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그 중 셋이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세 놈이 툭 툭 툭 연이어 세상을 떠나고 회원은 다섯으로 푹 줄어 버렸다. 의리 없는 새끼들! 슬펐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먼저 떠난 놈들을 막 욕했다. 모임은 영 맥을 못 추었다. 그래도 이 소설 속에서는 어쨌거나 그들이 아직 모두 살아 있다. 소설 속 홰나무처럼 그들은 영속하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봤을 리가 있나? 없어진 걸.”

친구들의 대답 중 과연 그의 반응이 가장 명백했다.

“근데, 말이야…….”

나는 말을 더듬었다.

“……난 봤거든. 분명히 봤거든. 그날 재규는 뿌리에 걸터앉아 있었고, 동인이는 깝죽대면서 그 나무에 기어오르기까지 했었거든. 물론 니가 도착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흠…….”

그가 말했다.

“……니가 봤다면, 본 거지 뭐.”

태구의 대답이 슬그머니 재규의 것과 닮아갔다.

“무슨 말이야. 나무가 없어졌다며? 없어진 나무를 어떻게 볼 수 있는 거냐구? 재규 새끼도 꼭 너처럼 말했어!”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난 믿어. 니가 그 나무를 봤다는 걸.”

“어떻게 믿는단 말야. 나무는 거기에 없다며?”

“나무라는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보이고 그러는 거니깐. 나무뿐만인가 뭐…… 복잡할 거 하나도 없어. 나도 마찬가지지만 걔네들한테도 있던 나무가 안 보이고 없던 나무가 보이는 일은 다반사인 거야.”

“다반사라구?”

“그런 예를 들라면 백 개도 넘게 들겠다. 고향 떠나 살았다고 다 잊어버렸냐? 뭐가 이상해. 늘 있는 일을 가지구…….”

“늘 있는 일이라구?”

“너한텐 이상하게 보일진 모르지만 우린 그냥 그런 것하고 뒤섞여 살고 있는 거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일은 있어왔고, 태어나 자라면서도 겪었구, 죽어서도 그런 일은 계속 있게 될 거야, 여기선. 흐린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 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아.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이야…… 너도 언젠가 도깨비한테 홀려서 산에서 헤맨 적이 있었잖아.”

1957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별명의 달인』 『아닌 계절』 등과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내 목련 한 그루』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동주』 『타락』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등이 있으며,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인생은 깊어간다』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avocado105@hanmail.net​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