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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더 이상 나를 흘리지 않는다

선택안함

이향란 2022-09-30

ISBN 979-11-922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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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부터 멀어진 사람
그리하여 사람을 벗어난 사람
구름 속의 그런 그가
가늘고 긴 담배를 꺼내 물면
나는 내 눈물을 힘껏 그어
불을 붙여 주었지
아직도 서툴고 서럽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빛나는 어떤 것만으로도 괜찮아
겨우 웃으면서

네가 내게 사랑을 고백할 때 시리아에서는 민간인을 향한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갔고, 아프리카 어느 들녘에서는 야생의 짐승과 짐승이 서로를 먹기 위해 피를 흘리며 물어뜯고 싸웠다.

아, 부드럽고 달콤하여라. 사랑의 고백이 내 몸을 휘휘 돌며 피처럼 뜨거워질 때 생계를 감당하지 못한 한 가정의 아비는 17층 아파트에서 나비처럼 훨훨 생의 그늘을 날렸고

너의 사랑 고백이 호수 한가운데에 이는 파문처럼 내 영혼 속으로 번져 갈 때 달리던 자동차에 치여 개죽음이 된 누군가의 심장은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도 날 수 있는 하늘
그곳 어디에선가 수백 명을 태운 비행기가 갑자기 검은 연기를 뿜으며 추락할 때, 바로 그 하늘 아래 색색의 튤립이 만발한 곳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객의 축하를 받으며 한 발 두 발 결혼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네가 내게 사랑을 고백하던 바로 그때 그 순간,

강원도 양양 출생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2002년 시집 『안개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너라는 간극』 『이별 모르게 안녕』(전자시집) 등​

 

lan1018@hanmail.net​

네가 내게 사랑을 고백할 때
재료들
밀려오는 것들
먼 데 있는 사람
물의 역
사랑은 더 이상 나를 흘리지 않는다
얼굴
순간의 사람
나는 아직 돌아오질 않았네
훔쳐 읽는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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