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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여자, 걷는 남자

소설 단편

김솔 2023-01-25

ISBN 979-11-92211-60-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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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의 문장으로, 걷는 (중국) 여자와 (멕시코) 남자의 선험적 유대감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족보행(二足步行)은 힘들고 위험스러운 전략이다. 골반이 엄청난 부담을 지탱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필요한 강도를 유지하려면, 산란관이 상당히 좁아져야만 한다. 그런 골격은 두 가지 중요한 직접적인 문제와 하나의 장기적인 문제를 가져온다. 첫째, 아이를 낳는 산모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게 되고, 산모와 아이의 사망률을 크게 증가시킨다. 더욱이 아기의 머리가 좁은 공간을 통해서 빠져나오려면, 아기의 뇌가 작아서 아직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출산해야만 한다. 그래서 신생아를 오랫동안 돌봐주어야 하고, 그것은 다시 남성과 여성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다.“

-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덕환 옮김, p467, 까치, 2011

라스베이거스는 걷는 여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최적의 장소였다.

하나, 관광객들이 카지노 밖에서 지갑을 잃지 않도록 경찰과 갱이 협조한다.
둘, 건물 안팎은 물론이고 거리마다 설치된 폐쇄카메라로 도시 전체가 매일 기록된다.
셋, 돈벌이에 활용할 수 없는 그늘의 벤치와 휴지통은 모두 없애고 길을 뚫는다.
넷, 현재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징후들은 모두 제거된다.
다섯, 카지노를 제외한 상점들은 저녁에 문을 열고 아침에 문을 닫는다.
여섯, 카지노 근처에는 사무실이나 가정집을 건설할 수 없다.
일곱, 호텔 객실에는 최소한의 편의시설 밖에 설치할 수 없다.
여덟, 뉴스나 다이어트 관련 광고나 뉴스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아홉,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시설이나 구경거리가 많다.
열, 소비가 자본주의의 윤리라는 믿음이 통용된다.
열하나, 지갑 속에 달러를 지니고 있는 한 결코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
열둘, 살인을 제외한 모든 일탈이 묵인된다.
열셋, 숨통을 조이는 낮의 열기가 밤의 욕망을 순수하게 정제한다.
열넷, 연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열다섯,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 소비량을 제한하지 않는다.
열여섯, 길은 굽지 않고 곧바로 뻗어 있다.
열일곱,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한 곳에서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여자는 미얀마의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스트립 거리를 따라, 특별한 기대나 목적을 지니지 않은 채, 그저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걸으면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거나 아더왕의 전설을 듣고, 자유의 여신상 아래를 지나 몬테카를로의 야경에 감탄하며, 이탈리아식 분수와 홍학의 춤을 구경하다가, 에펠탑과 카이사르의 성채 앞에 이르러 겨우 방향감각을 회복한 뒤, 신비한 룬문자의 방패를 뚫고 서커스단 천막 사이를 통과하여, 마침내 성층권 아래의 바벨탑에 이른다. 거기서 물 한 모금 삼키고 방향을 바꾸어 기억을 거슬러 오르는데 걸음걸이의 리듬은 한결같다. 다시 미얀마 유적지에 도착하면 하루 분량의 일생은 둔감의 밤과 함께 여자를 빠져나가고 죽음의 계곡에 숨겨져 있는 무덤 한 기基가 불룩해진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망상, 어語』 『유럽식 독서법』, 장편소설로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부다페스트 이야기』가 있다.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nyxo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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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에 관한 독특한 해석 솔트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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