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그림을 영화라 치고 사람들에게 ‘플롯’ 중심의 감상문을 받는다면 어떻겠나. 공간적 배경은 프랑스 아를 지방의 포룸 광장에 실재하는 카페 테라스이고, 시간적 배경은 한밤중이고, 야외 테이블 상당수가 비어 있으며, ……. 이러한 분석적 리뷰가 과연 고흐의 작품에 온당한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런 취지의 얘기였을 것이다. 발언자인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어서 “나는 플롯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 대신 ‘스타일’에 천착한다.”라고 말했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속 하늘에는 꽃잎의 형상을 한 별들이 떠 있다. 이 이미지를 감각함으로써 발현된 내 마음속 일렁임은 확실히 ‘서사성’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고흐의 ‘스타일’이 그러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켰을까. 아직까지는 그렇다고 믿는 입장이다.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얼기설기 써 나가면서도 ‘하지만 누군가의 심동(心動)을 자극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꿈을 꾼다. 소설 쓰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포기하려는 심정도, 포기 못하겠는 미련도 다 꿈만 같다.
오래전 어느 잡지에서 읽은 시인 김경주의 발언을 독경하듯 중얼거렸다. “문학은 재능이 아니라 용기, 골방 미스터리가 되지 말 것.” 영화감독 우디 앨런도 예술가의 태도를 두고 비슷한 말을 했었다. “재능은 운, 진짜 중요한 것은 용기(Talent is luck. The important thing in life is courage).” 유명한 작가들이 하는 말이니 믿을 만하겠지. 회사 출근 시간과 동일한 매일 오전 아홉 시, 용기를 내고 앉아 진득하게 한 줄 한 줄 써 나가는 연습을 했다.
습작 쓰기와 소설 관련 책 읽기를 이따금 병행했다. 소설책 말고 소설과 소설가에 관한 책.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워낙 수두룩해 장바구니에 골라 담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한 권만 사 보았다. 종이책은 절판이라 전자책으로 구입한 그 도서는 제목부터가 벌써 『소설가』였다. 저자 이름이 낯익었다. 박상우. 오래전 치과에 갔다가 긴 진료 대기 시간 동안 읽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표제작 「내 마음의 옥탑방」을 쓴 소설가였다. 대기실 협탁 위 미니 책장에 꽂혀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름이고 제목이다. 당시 친한 친구가 마침 옥탑방으로 이사한 직후여서 자연스레 책에 손이 갔던 것 같다. 나중에 친구네 놀러가서 알려줬다. 야, 옥탑방 나오는 소설도 있더라. 잘 살아.
직업적 주변인으로 지내 오다 소설을 한번 써볼까 마음먹었던 인간에게 『소설가』는, 어린 시절 석가탄신일 기념 수계식 때 받았던 연비(燃臂)처럼 뜨끔했다. 태도를 재편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야 하나, 소설가를 바라는 것이어야 하나. 여전히 쨍한 빛점으로 향내를 발하는 본문 안 그 문장을 옮겨와 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단순한 표현 욕구를 반영한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건 평생 종사할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 일이다. (…)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되는 이 지점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어정쩡하고 어설픈 태도를 보인다. 그로부터 시간과 열정을 비롯하여 많은 부수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소설가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다?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선택지였다. 불현듯 무서워져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주변인 경력 20년, 사무원 경력 10년인 실업자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주제였다. 제도권 문단의 높은 ‘채용’ 장벽을 넘어설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글-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팔뚝이 계속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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