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공동: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작가의 말
검도는 요컨대 칼싸움이다.
오래전 검도를 배울 때 읽은 검도 교본의 서문 속 이 문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검도는 정신 수양의 스포츠다, 검을 쥘 때는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한다, 상대의 발재간에 홀리지 말고 죽도의 흔들림을 주시해라, ……. 이런 갖가지 수사들을 단번에 해치워 버리는 문장이었다. 됐고, 검도는 걍 칼싸움이야.
「공동(空洞)」은 소설, 즉 지어낸 이야기다. 본문에 등장하는 기업도 인물들도 다 허구다. 특정 회사와 회사원들을 비하 또는 희화화할 의도는 없었다. 장기근속의 가치를 폄하할 작정도 아니었다. 됐고, 「공동」은 걍 소설이다.
언어가 생물이라면 ‘고용 안정성’이라는 말은 멸종 위기종이다. 오래지 않아 사어(死語)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중소기업에서 십여 년 근무하면서 자주 했던 생각이다. 「공동」은 이 생각을 단편소설 분량으로 늘인 이야기다. 요컨대 걍 소설이다.
됐고, 걍 소설이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쓴다. 첫 문장을 쓸 때의 비장한 태도, 거창한 주제 의식을 넣어 보기로 했던 최초의 기획 의도, 공모전 낙선을 통해 차곡차곡 적립된 좌절감, 동년배 혹은 나보다 어린 스타 작가들의 글을 읽다 느끼는 (마치 내가 숱하게 이직하는 동안 진득히 대기업에서 근속과 승진을 이어 가는 동갑내기와 만날 때처럼) 열패감. 이 모든 감정의 동요는 소설 쓰기든 검도 수련이든 제거 대상이다. 그렇게 믿는다. 죽도 대련에서 단 한 대도 못 때린 내가 울적해 있을 때, 관장님은 실실 웃으며 말하고는 했다. 어이, 됐고, 그냥 칼싸움 한 번 진 것 가지고.
스토리코스모스는 그 옛날 검도관 관장님을 떠올리게 했다.
남녀노소 모두 검도를 배울 수 있다. 소설 쓰기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만인에게 다 열린 검도관이어야 승단 심사가 활발하고, 검도인들이 많이 탄생한다. 검도관 다니는 동네 사람들끼리 초단도 못 땄다고 누군가를 배척한 적은 없다. 유단자가 신입 회원과 대련해 지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다고 유단자가 놀림당하거나 신입 회원이 기세등등해지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관장님의 말이 그 불상사의 가능성을 일거에 가른다. 어이, 그냥 칼싸움이야.
어이, 걍 소설이고 칼싸움이야.
스토리코스모스 같은 문학 플랫폼이 더 많아질수록, 국내의 지망생들이 보다 씩씩하게 글을 쓰고 ‘대련 패배’를 받아들이고 그로써 문학의 대련장 안에 진한 땀냄새가 진동하리라, 하는 생각을 한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문학 공모전 당선작 발표 시즌인 이 12월. 응모자, 당선자, 심사위원, 그리고 오래전 검도관 사람들과 함께 외치고 싶다. 어이, 걍 소설이고 칼싸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