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은 겉으로 보아서는 약한 듯하지만 그 내부에 남다른 의지와 용기 혹은 지혜를 감추고 있는 인간, 그럼으로써 궁극에 있어서는 진실로 강한 자임이 확인되는 인간을 사랑하며, 그의 여러 작품들 속에서 그러한 인간형을 지칠 줄 모르고 그려낸다.” -문학평론가 이동하
고향의식과 유년의 상처를 바탕에 깔고 서정과 서사가 잘 조화된 단편소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순원 소설의 에센스. 시대를 넘너드는 서사공간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의 변주는 이순원 문학세계의 아우라에 개성적인 빛을 부여하여 한국소설사에 각별한 자리매김을 하게 한다.
<작가의 직무유기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 책은 묶여지고, 그 책의 제일 앞장을 빌어 나는 말한다. 절대 직무유기하지 않을 터이다. 내 스스로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글을 쓸 터이다.>
오래전, 종이책으로 첫 소설집을 출간할 때 제일 앞장에 붙였던 글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웹북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니 세월과 세상의 변모가 새삼스러워진다. 인공지능도 소설을 쓰는 시대가 되고 보니 소설에 대한 견해도 다시금 되짚어보게 된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고,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거나 말거나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첫 소설집에 붙였던 저 문장들을 웹북 소설집에도 그대로 붙이겠다는 말이다.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산다고 해도, 인생은 결코 직무유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나를 메고 간다.”
그러자 정말 자신이 거북이를 메고 가고, 또 거북이가 자신을 메고 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형도 나중에 작업실에 와서 거북이를 보고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그래, 좋은 친구를 데려다 놓았네, 이런 친구가 옆에 있으면 한결 낫지, 라고 말했다. 그는 형에게 그 친구는 바다에서는 우아하게 수영하고, 바다를 나와서는 한여름 땡볕의 주차장에서도 일광욕하고 또 소금기 가득한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길 위에서도 일광욕하는 유일한 종류의 바다거북이라고 말했다.
6년이면 꽤 긴 시간을 함께 지켜보며 걸어온 셈이었다. 어떤 뜻의 몸짓이었는지 그 앞에서 한 번 크게 몸을 움직인 적도 있었다. 아마 그때 거북이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는 여자에게 그 거북이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 나아가고 싶어하는지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때 그 거북이는 푸른 모래를 헤치고 어디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게 자기 일이어도 시간이 흐르면 쉬이 잊어버리고 만다. 아니, 쉬이 잊히지 않는 일이 있듯 쉬이 잊히는 일도 있다.
다시 거북이가 몸을 움직이는 것 역시 그렇다. 어느 날 왼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는 다른 무엇을 하다가 자신이 거북의 몸을 건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계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듯 거북의 균형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보다 더 많이 몸이 돌아가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거북이가 다시 푸른 모래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북이가 다시 자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경주에 가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서라벌사장 주인도 이젠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그는 그런 경주에 가서 아내에 대한 생각의 끝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세상 바깥의 또 한 축으로만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니 그런다 하더라도 그게 이제는 예전처럼 못 견디게 마음에 부대끼지만 않는다면 석굴암을 오르며 법화경을 다시 떠올리는 일 역시 그렇게 못 견딜 일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시 갔을 땐 그곳 언덕길에 푸른 모래가 곱게 부서져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엊그제 아내의 9주기가 지났다.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나무』 『워낭』 『벌레들』(공저) 등 여러 작품이 있다. 동리문학상, 남촌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lsw8399@hanmail.net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그 여름의 꽃게 푸른 모래의 시간 낮달 끼브미와 깨라리 절망, 그 연습에서 연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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