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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박호연 2024-12-25

ISBN 979-11-93452-85-1(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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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숲에 살다 보면
사람 몸에 숲 냄새가 뱁니다.
글쎄 입에서도 구취 대신 화한 솔 내가 나더라고요.
그게 신기해서 통나무처럼 누운 옆 사람에게 코를 킁킁대다
어떤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잠든 옆 사람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소설의 플롯을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제법 시간이 흘러
숲의 나무들은 잘려 나가고
우리는 숲을 떠났지만
이야기 속 인물은 저에게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거듭 고쳐 썼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숲>은 무성한 가지를 높게 뻗어 세상의 빛을 쐬려나 봅니다.
오래 묵은 소설을 발표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어수선한 시국에도 심혈을 기울여 수많은 응모작을 읽으셨을
심사위원 여러분의 노고를 생각합니다.
<숲>을 뽑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계속 써보겠습니다.

네가 처음 나를 찾아온 날은 천지가 온통 순백이었다. 순백으로 켜켜이 쌓이던 눈은 오후가 되자 그쳤다. 그러고는 날이 갰으나 골바람이 쌩 불어와 새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가루들이 환영처럼 흩날렸다. 늦은 점심을 먹고 문밖으로 나갔다. 흰빛이 반사된 세상은 시리도록 환했다.

다음 날 있을 글 모임에 나가려면 얼기 전 눈을 치워야 했다. 저 아래 길가까지 눈을 밀어내고 나니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로 땀이 배어났다. 외투를 벗어들고 비탈을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스노우 부츠를 벗자마자 전기 주전자에 물부터 올렸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었다. 물이 끓으면 휘파람을 부는 주전자가 후후, 하기 시작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네가 서 있었다. 빛바랜 고동색 바지에 깃이 해진 셔츠, 계절에 맞지도 않은 옷을 입은 네게 물었다.

누구시죠?

짧은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 버렸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리듯 너를 집안으로 들였고, 얼마 되지 않아 뜨거운 박하잎차를 앞에 두고 사인용 식탁에 마주 앉아 있다.

그러니까 그쪽이 저기 저, 마당에 서 있는 적송(赤松)이라고요?

너는 웃음기 없는 독일 영화의 무뚝뚝한 배우처럼 표정 없이 대꾸한다.

당신이 아끼시는 나무가 바로 접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상한 말을 하는 너에게 전염된 듯 나도 담담하게 묻는다.

그런데 어째서 거기 서 있지 않고 절 찾아온 거죠?

날도 추운데 늘 혼자인 것 같아서요.

네가 하는 말이 놀랍기도 놀랍지 않기도 하다. 내 집 마당에 선 근사한 소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그 나무에 정령이 있으리라 상상하곤 했으니까.

자주 상상하면 이루어지는 법이죠.

​제8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수상

2018 산문집 『산골에서 혁명을』 출간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 선정)

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genrebul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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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붉은 소나무를 잉태하다 혜섬 20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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