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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농장: 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주한나 2024-12-25

ISBN 979-11-93452-86-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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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당선 전화를 받고 어떤 말을 말을 전해야 할까, 몇 날 며칠 고민했다.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말을 찾고 싶었다. 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부표처럼 떠다녔지만 마땅치 않았다. 거창한 포부나 어떤 다짐 또한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매일 같이 나의 무능을 들여다보며 좌절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내일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썼다가 지우는 일을 지겹게 반복하고 대부분 낙심하겠지만 나는 매일 나의 무능과 마주 앉아 있겠다. 째려보고 미워하고 인정도 하면서.

드디어 출생 신고를 마친 느낌이다. 그 길을 터 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날도 연우는 9번의 텐트에 있었다. 간간이 속삭이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9번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탄성을 뱉었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나는 조심스럽게 9번 텐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슬그머니 지퍼를 내리고 그 사이로 얼굴을 디밀었다.

-어딘데요?

9번에게 안겨있는 연우를 보며 무심결에 밖을 가리켰다. 9번이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나는 그녀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말을 이었다. 숲이 무성해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그날 연우는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12번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잔뜩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줄 알았어. 내 그럴 줄 알았다고. 개 같은 년. 저만 살려는 이기적인 년.

별안간 12번이 제 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의 딸은 엉덩이를 빼며 앙상한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싫어. 하지 마.

12번은 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12번이 딸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그녀의 딸이 개처럼 질질 끌려 나왔다.

-괜찮을 거야. 적어도 이곳보다는.

12번은 딸을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길게 입을 맞췄다.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딸을 밖으로 힘껏 밀었다.

-같이 갈 사람 없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만 껌뻑였다. 12번의 얼굴에 짙은 경멸과 조소가 어렸다.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겁쟁이들. 너흰 앞으로도 쭉 다리나 벌리고 살라고.

12번은 말을 마치자마자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미쳤어.

나는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한 손으로 머리를 쥐고 돌아보았다. 여자 하나가 두려운 얼굴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녀 손에 들린 상자 모서리엔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hannajoo80@naver.com

토마스 농장: 2024-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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