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안함
노래, 그 쓸쓸함의 양식
작가의 말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을 축으로 한 관계의 총체이다. 이승에서 우리,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사물들, 풍경들, 시간들과 연루된 두두물물이 이쯤 서서 되돌아보니 한결같이 소중하고, 하나 같이 아름답다. 소중한 만남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그것이 비록 빛깔과 향기를 달리 한다하더라도 운명이었으니까. 아아, 그러나 검은 시간의 골짜기에서 만나고 헤어진 내 누이의 날들, 폐허의 정거장을 잊을 수 없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정거장은 수천 번의 이별과 수만 갈래의 미로를 내장한 시간의 육체임을 안다. 정거장엔 아무도 집 짓지 않고 정거장엔 아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정거장의 이미지는 형벌이며 유적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폐허로 태어나 폐허로 살다가 폐허로 되돌아가는 이 세상 정거장의 아픈 숙명을 안다. 기록이 필요한 이유이리라.
기록이란 말은 영구불변의 금강석 같다. 기록이란 소멸의 항체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생의 의지이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기록한 사람의 지분은 아주 적다. 금강석은 단단해서 시간을 비끼고, 그 빛은 찬란해서 천지를 비추나 한 시절의 주인은 이미 그곳에 없다. 나마스테! 노을 진 창 너머로 보면 지난여름 초록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흰 구름 간다, 寂寂寂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