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네 : 2023 현진건문학상 수상작
작가의 말
바닷가로 산책하러 자주 갑니다. 그곳에는 햇빛과 바람과 파도와 모래뿐만 아니라 문장들이 바다에 떠다니고 있거든요. 해풍에 잘 마른 문장을 건져내기 위해 매일 단단하게 다져진 모랫길을 따라 걷고 또 걷습니다. 파도에 다져진 모랫길은 얼마나 단단하고 야문지요. 그 모래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수없이 파도에 협박당하고 싸우며 견뎌낸 시간을.
파도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래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갈 때마다 모랫길이 달라져 있거든요. 모랫길처럼 단단한 문장의 근육을 키우고 싶습니다. 눅눅하고 비릿한 문장을 햇빛에 잘 말려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좌절감에 무너져 허우적거리는 긴 시간일지라도 다시 버텨 보려고 합니다.
나만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산책하다가 다리를 다쳤는지 꼼짝도 못 하고 물가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보았어요. 처음엔 죽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살며시 눈을 떠 바라보는 눈빛이 순했습니다. 안아서 다리에 낚싯줄이 걸렸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겁이 나 만지지 못했어요. 가지고 있던 옥수수알갱이를 앞에 놓아주었더니 입에 대지 않고 쳐다만 보더라고요.
밝은 주황빛 부리를 가진 그 갈매기를 보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쓰였습니다. 밤새 파도가 달려와 갈매기의 날개를 적시지 않을까.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았을까. 다음날 바로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갈매기가 보이지 않더군요. 어디로 갔을까요. 파도가 삼켰을까요. 아니면 친구들 곁으로 날아갔을까요.
다락방에 나 자신을 감금하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단조로운 시간이었지만 늘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 혹은 좌절이라는 이름 앞에서도 나 자신을 믿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버티는 데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내가 쓰고 싶은 것과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이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도 버티다 보니 이런 운수 좋은 날이 찾아왔네요. 그리고 힘든 길을 함께 발맞춰 가자고 하네요.
저의 부족한 글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제 앞에 큰 등불을 밝혀 주셨습니다. 현진건 선생님의 아호인 빙허처럼 큰 빈터에 문장을 채워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