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현관이 사라진 방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작가의 말
내 아내의 아버지는 60년대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낭만을 있는 한껏 만끽하셨던 분이다. 나훈아를 빼닮은 남자다운 외모에 젊은 시절 내내 모터사이클과 윈드서핑을 즐기셨고, 록 음악팬이라 친구들과 만든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시기도 했다. 졸업한 뒤엔 곧바로 선대로부터 이어온 가업을 계승하셨는데, 덕분에 버블 경제 붕괴로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와중에도 생계 걱정은 하지 않으셨다. 건축업을 하는 부친으로부터 이 층짜리 단독주택을 물려받으셨고, 지금은 남아 있는 빚도 없어 그동안 못했던 브랜드 기타 수집에 열을 올리시고 계신다. 장모님과도 사이가 좋아 주말이면 부부 두 분이서 데이트 즐기느라 바쁘시다.
작중에서의 화자도 비슷한 말을 하지만, 근현대사의 비극과 참상, 가난을 경험했던 대한민국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아오셨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 역시 나의 부모님보다 장인어른과의 대화가 편하고 익숙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선진국이 된 양 국가의 첫 번째 세대이자 국가적 쇠락을 경험한 최초의 세대라는 점에서 장인어른과 나는 비슷한 맥락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느니, 돈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게 최고라느니 등의 구호를 외치는 대신 묵묵히 너트에 새 줄을 감아 기타를 친다. 강박 가질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모두가 행운아일 수는 없다. <현관의 사라진 방>에서 등장인물 세 사람을 화해시키고 싶었던 건 나와 장인어른이 속한 두 세대 간의 불행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초고의 결말은 다카모리 씨의 주재로 주인공과 사야카 씨가 맺어진다는 결말이었으나, 뜬금없고 작위적이란 지적을 받고 지난 3년 동안 네 차례의 전면적 개작을 거쳤다. 첫 번째로 내가 알고 있다 믿어왔던 배경지식을 지웠고, 둘째로는 이루어질 가망 없는 희망적 결말을 들어냈으며, 셋째로는 작중 가장 좋아했던 장면을 삭제했다. 네 번째로 주인공이 마지막 신에서 흘리는 눈물을 없앴는데 내 딴에는 다카모리 씨와의 감정적 접점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결국 지웠다. 그러자 인물과 사건, 배경과 주제를 연결하는 인과 연이 드러났다. 내 깜냥으로 판타지에 가까운 달콤한 포장을 씌우는 건 무리였고, 스리슬쩍 발 빼놓고 건드릴 만한 소재도 아니었다. 소설 속의 나를 지워 나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세계를 꺼내는 게 최선이었다.
언젠가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쓸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읽는 이를 의식해서라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속이고 싶어서다. 아주 오랫동안 소설가가 된다는 걸 말도 안 되는 희망이라 여겨왔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 정말 설득력 있는 뻥을 쳤을 때 나 자신을 소설가라 세뇌시킬 작정이다. 너무 이른 영광을 주신 스토리코스모스와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