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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대리의 수신인 김 부장이 책상 위 볼펜을 다 떨어뜨리며 고릴라처럼 달려와 "협의하고 가져왔지?" 하는 데서 한 번, "악역은 무슨, 아역 아냐"에서 한 번, "사자 파이팅!"에서 한 번 웃었다. 물 한 번 안 묻은 칫솔도 그렇고. 조 대리 보고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사람들 진짜 하루 종일 개소리만 한다. 그래서 한참은 조 대리 편에서 읽었다. 오로나민C 열두 병에서 돌아섰다. 동료들 말버릇을 받아 적던 사람이 어느새 그들이 싸울 이유를 제 손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본인은 연구가 답보 상태라 실험 변인을 조작했다고 한다. 실험 변인이라고 부르니까 훔친 게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또 뭔가. "엥? 무슨 일? 인간아." "댐! 왓 더 퍽!!!" "리터럴리, 모든 여자다." 소설에서 개소리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개소리 연구자다. 각주 2는 더하다. 자기 입에서 나온 "카르—작!"을 "해당 종의 비의미적 놀람 발화"라고 분류해 놓았다. 자기가 그 종이라는 걸 각주에서 자백하고도 모른다. 조 대리는 반쯤은 안다. 외계인 얘기가 "자기합리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고 쓰고, 빈 병 사건 때는 "이번에 오로나민C를​ 회수한 건 내가 아니었다"고 쓴다. 자기 얘기까지 가다가 거기서 멈춘다.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서 더 서글펐다. 식탁 장면부터는 농담으로 안 읽혔다. 아버지가 말이 없을수록 어머니 말이 빨라진다. 오늘 있었던 일, 동네 얘기, 사소한 웃음거리. 말을 안 하면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조 대리의 가설이 그 식탁까지 한 번만 돌아가 봤으면 좋았겠다. 거기서는 한 사람의 고요를 유지하느라 다른 사람이 힘을 쓰고 있었다. 사자는 말이 없다. 사자가 나타나면 다른 동물들이 소리를 낸다. 소파 두 칸을 차지하고 리모컨으로 동물의 왕국을 틀어 놓는 게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남자 새끼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조 대리는 원래 말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 많다고 혼난 아이였다. 말이 많으면 사내답지 못하고, 말이 없으면 사람답지 못하다. 그 아이가 아버지한테 배운 문장을 방패로 내밀면 김 부장이 "사자는 말이 없는데, 늙은 사자는 말이 많다"고 받는다. 술자리 농담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에서 그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은퇴한 아버지가 가족톡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다. 팀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화해의 음료 스무 병을 하나씩 따서 쓰레기통에 붓고 뚜껑을 닫아 도로 넣어 놓는 사람. 병까지 버렸으면 누가 다 마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빈 병을 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욕을 읽고, 다시 팀장을 찾는다. 양쪽 얘기 듣느라 죽겠다던 사람이 그 자리가 없어질까 봐 그런 짓을 한다. 팀장은 모두의 수신인이라서 무너지고, 조 대리는 원하는 답을 주는 수신인이 없어서 일론을 만들었다. 소설을 "너 외계인이지?"로 연 것도 팀장이고, 조 대리를 가장 정확히 본 사람도 팀장이다. 둘이 같은 냉장고로 사람들을 움직였는데, 조 대리는 끝까지 그 둘을 나란히 놓지 않는다. 팀장을 분석하고 가설을 고치는 데서 보고서가 끝난다. 그래서 결말이 동료들을 너그럽게 봐 주는 장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조 대리 자신의 손자국이 먼저 묻어 있으니까. 일론은 답장을 안 한다. 대신 공개 계정에 짧은 문장을 올리고 조 대리는 그걸 자기한테 온 신호로 읽는다. "완전한 침묵은 한 번도 없었다." 말의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 자기한테 오는 말은 효율이고 뭐고 오기만 하면 된다. 아버지에게 일생일대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게 침묵이었다는 걸 알고 나면, 모두에게 열린 문장에서라도 대답을 찾아내는 그 모습이 웃기지가 않다. 마지막 카톡. 금리, 물 끓일 때 뚜껑, 하루 물 섭취량. 예전 같으면 조 대리가 '주요 발화 유형' 아래 분류했을 말들이다. 세 통 옆에 다 2가 붙어 있다. 아버지가 보낸 말이 아직 그대로 있다. 침묵으로 집을 다스렸던 사람이 이제 읽어 주기를 기다리는 톡을 보내고, 비밀을 털어놓고 대답을 못 받았던 아들은 그 톡에 답하는 대신 일론한테 오늘만 길게 써도 되느냐고 묻는다. 작가님, 이건 좀 너무하신 거 아닌가. 그런데 이 장면에서 호칭이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조 대리는 아버지를 "그"라고 부르고, 한 번은 "아버지, 아니 내가 한때 아버지라고 믿었던 그"라고 부르다가 스스로 고친다. 저 사자의 아들이 아니어도 되는 알리바이가 외계인이었다. 그런데 카톡 장면에서는 "가족 창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다". 이번에는 뒤에 '아니'가 오지 않는다. 나는 결말의 "딱 오늘만"보다 이 빠진 '아니'가 더 좋았다. 답장은 안 했다. 그래도 고쳐 부르지는 않았다.​ 한창현
해머를 시켰더니 해머링이 왔다 상담사한테 화가 나서 한 번 덮었다. "집안일보다야 밖에서 돈 버는 일이 훨씬 힘드니까요." 부부관계 때문에 온 여자한테 할 소린가. 남편은 오지도 않았는데 "한 걸음 내디디신 거예요" 하고 칭찬받고, 이십 년을 참은 은정은 "이제 은정 씨 차례"라며 수첩 두 권을 숙제로 받는다. 그 뒤 책장에는 '부부의, 부부를 위한, 부부에 의한' 책만 꽂혀 있다. 은정 몸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다. 제목이 왜 '몸의' 권리장전인지 거기서 알았다. 그러니 "적어도 선생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가 나왔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매주, 못해도 이 주에 한 번은 한다고 강연에서 말한 사람이 못 하는 사람한테 노력을 권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이 대사가 제일 세다고 본다.  남편은 끝내 못 미워했다. 물 때문이다. "찬물 아니고 미지근한 물 맞나?" 이십 년 넘게 아내 몸에 손을 안 댄 사람이 아내가 마시는 물 온도는 안다. 이런 사람이라 은정이 더 미치는 거다. 나쁜 놈이면 욕이라도 하지. 공벌레처럼 제 무릎을 끌어안고 자는 뒷모습까지 보고 나면, 이 사람도 자기 몸 하나를 혼자 안고 사는구나 싶어진다. 은정은 곰 인형을 안고, 허공을 안고, 마지막엔 베개를 안는다. 이 집에서는 아무도 사람을 안지 않는다.  웃기기는 또 왜 이렇게 웃긴지. 할머니 판결에 "뭐 이런 거지 같은 판결이" 하고 벌떡 일어났다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하고 자기가 참을 햇수를 계산하는 데서 웃다가 목이 멨다. 바나나빵도 그렇고. 제일 기막힌 건 위아래 집이 서로를 금실 좋은 부부로 알고 밤마다 속을 끓였다는 거다. 한 사람은 이십 년을 혼자 잤고 한 사람은 혼자 산다. 자기한테 없는 게 상대한테는 있다고 믿고 둘이 해머로 벽을 치고 있었다.  마그넷에서는 김이 샜다. 그게 배관이었다고? 그런데 "낡고 오래된 배관"이라는 말이 어디서 본 것 같아 첫 장으로 넘겨 보니 "낡고 오래된, 좁고 막힌 통로"가 있다. 은정의 몸이다. 갈 데 없는 물이 벽을 두드리는 집이 처음부터 은정이었던 거다. 해머를 시켰더니 상자에서 '해머링'이 나오는 데서는 작가님이 좀 얄밉게 웃고 계신 것 같았고. 그리고 '정당하게'. 예민하다는 소리, 복에 겨웠다는 소리를 이십 년 들은 몸한테 소설이 처음으로 편을 들어 준다. 윗집 여자의 "혼자가 편할 때도 있어요"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결말이었다.  하나만 여쭙는다. 내내 '여자'라고만 부르다가 마지막 두 문장에서만 '그녀'라고 쓰셨다. 일부러 그러신 건지.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남편은 여전히 작은 방에서 코를 골고 배관도 그대로다. 그런데 은정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한창현
그래서 결국 누구를 잡아먹었나   표지가 꼭 공포영화 같았다. 제목은 또 「너를 잡아먹을 시간」. 예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거기에는 ‘금지구역’이라는 섹션이 있었다. 19금이라는 말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한 호러와 외설 그리고 쏘우 시리즈 같은 고어 영화들을 모아 놓은 곳. 이 소설의 첫인상이 딱 그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누가 누구를 잡아먹을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괜히 의심했다. 누구지? 언니를 잡아먹는다는 건가? 남친? 아니면 아버지? 스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잡아먹히는지는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먹는다는 말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것 저것 먹으며 살고 있다 라고 하면 별일 없는 일상 같지만, 앞으로 뭐 먹고 살지 하면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처럼 들린다. 먹는 다는 것은 하루에 세 번이나 하는 일상이지만, 평생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성적으로 먹는다는 표현은 상대를 자기 쾌락을 위해 소비한다는 뜻이 묻어 있어 불편한 표현같아 보이지만 그런 탐닉의 과정 속에서 서로를 채워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 불편한 말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먹는 과정을 멀찍이 떨어져 모자이크 처리하는 게 아니라, 코 앞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것 자체가 메시지다. 그것이 관계고 사랑이라는 ……. 주인공 상처 또한 먹는 것에서 시작한다.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잡어회를 떠먹을 때, 어머니가 몇 젓가락 자신의 회를 언니에게 퍼 줬다고 주인공은 실망한다. 작가는 주인공이 그 좋아하는 잡어회를 남겨버림으로써, 주인공이 그때 받은 상처의 크기를 보여준다. 처음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이 연결된 것도, 아버지가 떠온 회 때문이며, 가족이 흩어지게 된 것도 아버지가 더 이상 회를 떠오지 않게 되었을 때다.     난 이 소설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식욕과 성욕,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이야기. 먹고 싶고, 갖고 싶고, 내 몫이 줄어드는 건 싫은, 매일 겪는 일이지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이 소설에서는 사랑이란 말조차 가식이다. 사랑은 곧 먹는 거다.  조재민
나도 아라가 되고 싶다   고인이 된 어느 소설가는 생전에 예술과 외설이라는 경계에 고문당했다. 사랑에 대한 몇 개의 시선은 그의 생을 더듬게 했다. 사랑과 불륜. 그런 소재로 시작하지만 단순히 사랑만의 세계관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자리에 누구나 집착하는 단어를 넣으면 삶의 진리를 관통하는 깊은 철학을 맛보게 될 작품이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아내가 젊은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도 인정하고 사진으로 남겨 아름답다 응원해 주는 사랑. 기가막힐 노릇이란 이미 지난 날의 사고방식일 뿐.  누구나 들으면 미친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사랑.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란 게 오히려 소유하는 게 되는 역설. 작품을 읽는 내내 호기심에 멈출 수 없는 흡입력. 정말 매력적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느 술집에 앉아 옆 사람들의 얘길 들으며 빨려 들어가는 화자처럼 독자는 작가가 그려내는 사랑에 대한 시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3개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구조 또한 독특했으며 더욱 새로운 건, 그 대상이 되는 두 남자는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이런 독특한 플롯 또한 읽는 재미다. 신선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독특함. 어쩌면 세대를 초월한,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에 관한 시선들에 혼이 쏙 빠졌다. 그래서 이런 서평을 남기고 싶다. 세계 명작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또한,  나도 한 번 쯤 아라가 되고 싶다. 여러분도 아라가 되어 보시길.혜섬
옷이 속삭일 때 어떤 소재로 소설을 쓸 것인가. 어떤 소재가 소설이 될 것인가.  소설로 귀결되어야만 하는 이야기 소재는 따로 존재하는 걸까.  방성식 작가의 소설 「옷이 걷고 싶다고 말할 때」는 빈티지 옷을 소재로 삼는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티지 샵을 기웃거리다 유튜버 셀비지 준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이 방문한 빈티지 샵처럼, 어쩌면 소설의 소재를 고르는 것 또한 비슷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세상에 존재하는 허다한 이야깃거리 중에서, 소설가는 소설이 될 만한 소재를 고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먼지 폴폴 날리는 빈티지 옷더미 속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옷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소설은 소재를 제법 잘 고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 로고가 딱지처럼 붙은 옷 대신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올드머니 룩이 뜨고, 가벼운 에코백이 유행하고, 빈티지가 하나의 대세처럼 자리 잡은 요즈음. 빈티지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소재뿐만이 아니다. 캐릭터 또한 공감대를 준다.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과 빈티지 유튜버인 셀비지 준 또한 시대상을 잘 대변해 주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렇게 찾아낸 빈티지라는 소재가 이 작품에 찰떡궁합처럼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허다한 빈티지가 있지만 유독 빈티지라는 소재가 이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이유는, 작가의 말에 쓰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빈티지 옷과 패션에 꽤나 미쳐 있는 사람이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단순한 소재거리가 아니라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난 소재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빈티지 옷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한 인간의 내적인 세계관을 이루며, 마침내 그의 현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중독에 물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약간의 호러와 블랙 코미디가 조합된 듯한 오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다 읽고 나면 해묵은 옷장에서 옷들끼리 소곤소곤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요즘 옷은 인간에게 아부히느라 가볍고 부드럽게 나오죠.  매일 돌려 입는 옷 대신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이시경
당신의 선은 어디인가  단숨에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소감은 재미있다, 였다. 이렇게 술술 읽힐 수가. 간결한 문장에 감탄하고, 플롯에 감동하며 일독이 끝났다.  하지만 단순, 재미있다, 라는 감상으로 이 작품을 감히 평가할 수 없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자연스레 사이사이 그어진 선이 보인다. 가해자의 선, 피해자의 선, 인간의 선, 안드로이드의 선이 선명하기도, 흐릿하기도 하다. 그 선의 경계는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신념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각자 가진 고통은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아 괴롭힌다. 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피해자는 오롯이 피해자일 수 없는가. 그들이 가진 신념은 왜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개인이 가진 기억과 자기 합리화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닥터]는 그런 인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너의 기억은 틀렸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림자를 따라 홀로 묵묵하게 선을 넘는다.  인간은 아마 영원히 모를 그 너머에 [닥터]는 0과 1이 되어 인간이 원하는 무한대를 떠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인간이 넘어서려고 하는 그 공간을. 유한한 인간이 신의 영역으로 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무한함마저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의 끝은 결국 공허,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실체가 없음을 다시 깨닫게 한다.  인공지능이 무섭게 발전하는 현실에서, 인간임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닥터]는 보여준다. 나에게 편향의 무서움마저 일깨워준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작가님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며,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건필하시길!주미경
계피맛 나는 지옥은 어떤 곳일까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계피맛 지옥 탈출기』는 성인이 된 주인공이 오빠가 만든 영화를 보면서부터 시작된다.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좋은 오빠였다. 누가 뭐래도 그건 분명했다. 아빠와 엄마조차 믿어주지 않던 얘기를 오빠는 믿어줬으니까. 그런 오빠에게 ‘나’는 의지했고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주인공을 안심시켜줬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계피 사탕을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오빠를 위해 내 미래를 기꺼이 양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눈앞에 마주한 오빠의 세상은 주인공이 알던 것과는 달랐다. 그간 ‘나’가 알았던 ‘좋았던 오빠’는 어디로 간 걸까.  계피맛 지옥 탈출기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차 은밀해지고 교묘해진다. 현실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가 한 가족의 내부로부터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고착되는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소설은 사뭇 낯선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이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 또 하나의 마력은, 계피향이라는 감각이다.  작은 계피 사탕 하나에 응축된 주제가 매우 견고하면서도 강렬하다. 사회적 맥락에서 또한 개인적 맥락에서 펼쳐지는 폭력적 일상과 그러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그려낸,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경
내 안의 구덩이는 잘 있나 ​학교폭력은 오래된 문학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어 왔다. 작가로서 나도 학교폭력을 소재로 쓴 소설이 여럿이었고(특히 학창시절에).  늘 기대하게 만드는 이시경 작가가 그리는 학교폭력의 내밀한 현실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거리낌 없이.   이 소설의 공간을 좁히고 좁히자면 '광안리 해변의 한 구덩이 안'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 구덩이에서 시작되어 '다른' 구덩이에서 끝이 난다.  하얀 티셔츠 학생이 누운 광안리 해변의 구덩이와 주인공 '나'의 마음 속 구덩이는 서로 대응되는데, 이 소설의 매력은 그 대응도 대응이지만 '광안리 해변'이라는 탁 트인 아름다운, 즐거운 공간을 다른 인물들로 배치함으로써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데 있다. 이는 '가장 친밀한 공간이 낯선 공간이 된다'는 공식의 또 다른 변주이다.  하얀 티셔츠 인물이 처한 내막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소설은 거기서 독자에게 상상과 추론의 여지를 남겨두고, '나'의 내면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의심하는 것처럼, 실제로 거기에 구덩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그 구덩이를 '누가' '어떻게' '왜' 팠는지, 만들었는지는 영원한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언뜻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일 때, 한순간 와장창 무너지고 마는 인간 내면의 허약함을 엿보이는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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