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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 모두의 검은 수첩에 대하여 「검은 수첩을 위하여」를 읽은 뒤 가장 강하게 남은 후감은‘기억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어떤 사건을 기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가를 드러내는 서사로 느껴졌다. 검은 수첩은 처음에는 과거를 붙잡기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고, 흐릿해지는 감정을 보존하려는 시도처럼 읽힌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그 수첩은 오히려 기억을 왜곡하고 재구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기록된 문장은 사실을 고정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선과 선택이 개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는가의 문제는 곧 ‘어떤 삶을 남길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기록의 양면성을 강하게 느꼈다. 우리는 흔히 기록을 진실에 가깝다고 믿지만, 이 작품은 그 믿음을 흔든다. 수첩 속의 문장은 실제를 반영하기보다, 오히려 화자의 해석과 욕망이 덧씌워진 또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감정의 처리 방식이다. 작품은 격렬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하고 절제된 문장들 속에서, 서서히 어긋나고 균열이 생기는 내면을 보여준다. 이 절제된 서술은 오히려 더 큰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독자는 분명한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의심하고 해석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명확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불안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내가 기록해온 것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검은 수첩’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결국 이 작품은 기억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자기 자신조차, 수많은 선택적 기록과 해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 기반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까. 「검은 수첩을 위하여」는 그 불안정한 기반을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시사랑
날것의 감각, 날것의 희망  한쪽에서는 ‘아파야 청춘’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안 아파야 청춘’이라고 한다. ‘안’이라는 글자 하나로 정반대의 의미가 된다. 얼핏 둘 다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다.  정작 아픈 당사자는 말이 없다.  아픈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우리 시대에 희망을 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생각보다 맛있다>를 읽고, 어설픈 희망으로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온몸에 문신처럼 퍼져나가는 상처를 통해 삶의 꽃을 피워나가는 당당한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현장을 살고,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상처 입는다. 그리고 스스로 핥거나 상대를 핥아 주며 삶을 위무한다. 허접한 설교조나 말장난이 아니라 ‘날것의 삶’으로부터 피어나는 ‘날것의 감각’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핥아 줘.” 이 말을 일상에서 상대방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묘한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그것을 미끼로 독자를 시종일관 이야기 속에 붙잡아 두는 작가의 과감한 전략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은 쉽게 읽힌다. 문장도 단순하다. 그러다 중반쯤 들어서면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밍밍한 플레인요거트를 먹다 중간에 숨겨진, 그것도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블루베리잼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남기지 않으려 핥게 된다. 밍밍함과 달달함, 그 묘한 조화 속에는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은 위로와 연대가 한 스푼 섞여 있다.  오늘 하루를 견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이처럼 사소한 ‘날 것의 감각과 서로 간의 소통’에 의지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다 읽고 나면, 내 몸에 난 상처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왠지 희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이시경
로보, 어서 나를 물어줘! 로보, 어서 나를 물어줘!   김성호 작가의 신작 <로보, 나를 물어줘>는, “개와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매개로 개인의 트라우마와 가족사의 비밀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서사적 실험” (-에디터픽 포인트) 이다.  2025년 3월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이후 일 년여 만에 여덟 편의 단편을 발표한 작가의 행보는 매번 새롭고 낯선 방향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개를 통한 시간여행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은 대개 그것을 가능하게 할 물리적 장치 설정에 기댄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별도의 SF적 설정 없이, 오직 문장의 힘만으로 시간여행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분절된 과거 기억의 시간 속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감각이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점이 신선하게 와 닿았다.  기억이라는 덩어리를 쪼개고 분해하면, 해결되지 않는 지점은 늘 어떤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상처의 빛깔도 어느새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누구든 그 상처를 처음 마주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무언가를 되돌리려 하거나 혹은 진실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묻는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전부일까. 만일 그 순간을 되돌린 이후에 새롭게 치러야 할 또 다른 트라우마가 있다면.  정체절명의 순간, 주인공은 다시 외친다. 로보, 나를 물어줘! 트라우마가 마치 삶의 속성이라도 되듯, 운명의 굴레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로보, 나를 물어줘>는 그 굴레를, 낯설게 비튼 시간 속에서 끝까지 정면으로 응시한다. 재독 삼독하면 또 새로운 의미가 보이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시경
크툴루 프타곤, 크툴루 프타곤  크툴루 프타근, 크툴루 프타근… 여기,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계몽’된 ‘한남’을 자처한 한 남자가 있다. 그로 인해 그는 그 여자, 수아와 함께 동거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계몽의 끝은 어디인가. 그는 수아로부터 한 차원 높은 ‘계몽’인 폴리아모리를 요구받는다.  수아의 요구에 현타가 온 그는, 그날 밤 홍대 클럽을 찾게 되고 거기서 한 남자, 정인을 만나는데.... 여기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러브크래프트 덕후인 그는 클럽에서 정인이라는 또다른 러크 덕후 동족을 만난다. 그 순간 홍대 클럽 안은 러크 속 크툴루의 신화가 작동하는 시공간으로 변모한다.  광기의 산맥에 이른 그는, 정인을 통해 사악한 기운이 흐르는 마의 렝 고원에도 이르게 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 그 너머로부터 쳐들어오는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그 역시 정인처럼 크툴루 신화 속 주문을 사용한다.  그 주문이 그간 자신이 지켜온 세계를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의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는 그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달라는 의미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젠더, 페미니즘, 폴리아모리, 성차별, 성평등, 가부장제, 성 소수자…. 현실에서 버젓이 통용되는 주제가 소설에서 더 이상 새로운 주제로 통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그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새롭고 신선할 뿐 아니라, 유쾌한 매력까지 더한다.  어쩌면,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주문을 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크툴루 프타근, 크툴루 프타근….이시경
너의 색은 나는 SF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김보영 작가의 작품만 읽는 정도다. 태생이 문과고,수학과학에 영 소질도 관심도 없어서 그렇기 때문일까. 그렇기 때문에 SF물은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을 날 가지고 있다.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서 이 작품의 '작가의말'과 '미리보기'를 보았을 때 역시 괜히 또 맞지 않는 옷에 눈독 들이는 건 아닌가, 우려했다.그럼에도 묘하게 당기는 매력과 흥미가 있었기에 읽어내려갔다. 우려는 기우였다. 작가의 폭넓은 독서관과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흥미로운 지점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술술 잘 읽혔다. 막힘없이. 이건 비단 문장의 가독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서사의 매끄러움, 구조와 전개의 적합성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색이라 부를 수 없다..."처음 들어보는 표현이었지만, 제목에 쓰인 것도 그렇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의 '핵'이 아닐까 싶다. 로봇이 자의식을 갖고, 인간과 대등해지거나 넘어서는 그 순간. 인규와 뮤는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 지극히 '인간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게 이 작품 내내 흐르는 사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 흥미를 갖고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다. 출간예정인 소설집에도 기대를 품는다.  이상헌
이토록 새로운 이토록 새로운 '퀴어'소설이라니.  읽고 나서 첫 번째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퀴어소설은 비단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의 소수성을 다루는 문학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폴리아모리', 다자연애 관계를 맺는 이들에 관해 다룬 이 소설 역시 퀴어소설이라 나는 생각한다. 인종차별주의 등 갖은 혐오로 점철되었다고 평가받는 작가 '러브크래프트'를 소재로 빌려와 폴리아모리를 다룬 작가의 접근이 신선했다. 평소 퀴어소설을 많이 쓰는 나로서는 작품을 읽기 전 작가의 말과 미리보기를 봤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왔다고 해야 하나, 이 작품은 내가 반드시 읽을 것이라는 어떤 주문 같은 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를 활용하며 차분히 전개되던 이야기가 삽시간에 서스펜스적인 면을 띠며 그야말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닮은 공포를 발산하는 지점, 거기가 이 소설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사실, 오늘날에 퀴어소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다룬 글이나 예술, 매체는 더욱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 <잠을 자며 부활을 꿈꾼다>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나는 시스젠더 남성 작가로서 이 작품이 짚어내는 현대 사회의 젠더 이슈에 대해 매우 공감했고, 돌아보며 생각해볼 점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부활이란 무엇일까. 왜 '나'는 수아의 귀에 대고 부활을 꿈꾼다고 말한 것일까. 그건 다소 섬뜩하기까지 하다.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감수성의 부활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러브크래프트'와 그의 작품을 떠올려보면 나름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로 수아에게 여겨지는 '나'에 내재된 어두운 자아(혐오, 차별을 하는)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닐까 선뜩해지기도 한다.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근래에 '새롭다'고 느낀 소설이 별로 없는데, 이 작품만은 예외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이상헌
퀴어 리얼리즘과는 결이 다른 퀴어 소설 이 작가의 「것」에 대한 리뷰에서 "다음 소설, 예약합니다!"라고 선언했으므로새 소설이 눈에 띄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선언적이고 도발적인 제목 얘기부터 안 할 수가 없겠는데「퀴어문학은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은 직설적인 혐오를 표방한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읽어보면 퀴어 혐오는 타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자기부정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라는 게 분명해진다.다시 말해 혐오의 언어로 시작해 죄책감과 애도의 서사로 끝나는 일종의 밀실극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서점은 심리적 수감시설이고1,549일이라는 기간은 자신에게 내린 형량이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의 기간이다. 2인칭 시점 ‘당신’을 잘 활용한 소설로서 독자들은 이 수감시설에서 일어나는 심리극에 동참하며공범이거나 증인이거나 재판관의 감정적 지위를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퀴어문학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기존 퀴어와 분명하게 차별화된다는 점에서이 소설은 매우 현대적이며 낯설고 새롭다.박상영, 김봉곤 계열의 퀴어 리얼리즘과는 결이 다르고오히려 죄의식 서사나 폐쇄적 측면에서 카프카적 계보에 가깝게 느껴진다.스토리코스모스 카페에서 이 작가가 20대라는 걸 알고 놀랐는데그의 창작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계속해서 기다리는 즐거움을 주는 작가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책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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